항공·배 대신 기차…붐비는 '新 실크로드'

중국산 노트북 철도로 유럽수출…유럽산 車부품 들여와 中서 조립
중국과 유럽연합(EU) 간 철도 운송 물량이 늘고 있다. 중국에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면서 항공보다 물류비가 싸고, 선박보다 운송이 빠른 철도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도 열차를 이용해 자동차 부품 등을 중국으로 보내고 있다. 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 물류 수단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중국과 유럽의 철도 교류는 ‘신(新)실크로드’의 일환”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HP, 노트북 400만대 유럽 수출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중국 남서부 충칭(重慶)시에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철도를 이용해 자사 제품을 유럽으로 운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충칭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생산하는 휴렛팩커드(HP)는 지난해부터 지난달 말까지 400만대의 노트북을 열차를 이용해 유럽으로 운송했다. 노트북들은 충칭에서 카자흐스탄,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 뒤스부르크까지 보내진 뒤 유럽 각지로 팔려나간다.

HP는 앞으로 잉크젯 프린터도 같은 경로를 통해 수출할 계획이다. 현재 1주일에 1대꼴인 수출용 물량을 내년부터 1.5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토니 프로펫 HP 부사장은 “우리는 그동안 중국 서부지역의 개척자였지만 이제 철도길(충칭~유럽)을 개발하는 개척자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대만 전자업체 폭스콘과 에이서가 충칭에서 유럽까지 열차로 자사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유럽에서 중국으로 운송되는 제품들도 많다.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주요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자국에서 만든 차 부품을 열차를 통해 중국 내 조립공장으로 운송한다. 중국에서 조립하는 것이 인건비 등 제조원가가 싸기 때문이다.

BMW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중국 선양의 조립공장까지 1주일에 3~7대의 열차를 동원해 부품을 실어 나른다. 러시아 국영철도 운송 독점권을 갖고 철도 물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파이스트랜드브리지(FELB)는 “다른 업종의 유럽 업체들도 철로를 이용해 와인, 재활용 고철, 플라스틱, 화학물질 등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며 “유럽으로 이동했던 열차가 제품을 실어오지 않으면 손해가 크다”고 설명했다.

◆항공보다 싸고 선박보다 빠르다

최근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충칭 등 내륙지방까지 진출해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공장이 중국 남동부의 항구에서 1000㎞ 이상 떨어져 있다는 게 애로사항이었다. 기차나 트럭으로 상하이(上海)나 선전(深)의 옌톈(鹽田) 물류항까지 제품을 옮긴 후 다시 컨테이너선으로 유럽까지 나르면 40일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게 유럽으로 제품을 옮기려면 화물 비행기를 이용하면 되지만 컨테이너 1대에 약 3만달러의 물류비가 들어가 부담이 컸다.

하지만 철도로 유럽까지 제품을 운송하면 항공기에 비해 물류비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컨테이너선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2배가량 돈이 더 들지만 유럽까지 21일 정도면 운송할 수 있다는 점이 철도의 매력이다. 철도 운송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항공 운송의 30분의 1에 불과해 환경친화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동부지역 업체들은 충칭~유럽 간 경로 외에 중국 북동부와 TSR(시베리아횡단철도)을 경유해 이동하는 철도길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까지 잇는 철도를 확장하려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최근 “중국 정부가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철도 건설 자금을 대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중국의 대EU 수출액은 3022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