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청와대 낙하산은 유죄?

차병석 < 정치부 차장 chabs@hankyung.com >
남양호 한국농수산대 총장은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 언론이 청와대 출신 ‘낙하산 인사’를 거론할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서다. 그는 ‘청와대 출신’이 맞다. 2009년 3월부터 3년1개월간 청와대 농수산식품비서관으로 일했다. 이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거쳐 작년 말 농림수산식품부 소속 한국농수산대 총장에 취임했다.

경영학 박사인 그는 원래 농업 전문가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16년간 농업관련 연구와 컨설팅을 했다. 그런 그를 ‘낙하산 인사’로 비난하는 게 맞는 걸까. 양유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원장도 비슷한 경우다.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인 그는 통신개발연구원 연구위원과 정보통신정책학회 회장을 지낸 정보통신 전문가다. 그 능력 때문에 2008년 청와대로 스카우트돼 방송정보통신비서관을 지낸 게 ‘낙하산 인사’ 꼬리표를 붙게 했다. 임기말 '어공'들 재취업 비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작년 말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사람을 보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 이후 이들은 도맷값으로 ‘공공의 적’이 됐다. 한때 청와대에 몸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정권 말 특혜성 인사’ ‘알박기 낙하산 인사’로 매도 당한다. 때문에 지금 청와대에 남아 있는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외부 재취업을 꿈도 못 꾼다. ‘어공’은 정당이나 대학 연구소 언론 등의 출신으로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한시적 공무원들이 자신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현재 청와대엔 비서관(1급) 이하 ‘어공’이 전체 정원의 절반인 15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 청와대 문 밖을 나가는 순간 실업자가 될 처지다. 반면 ‘늘공(늘 공무원·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을 지칭)’들은 대개 1~2계급 승진해 친정 부처로 복귀한다. 청와대에서 한솥밥 먹으며 똑같은 일을 해오던 사람이지만 ‘늘공’과 ‘어공’의 운명은 하늘과 땅처럼 갈린다. 문제는 이 ‘어공’들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는 건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란 점이다. 이들이 청와대에 차출됐다는 건 1차적으로 검증된 인재란 증거다. 이들은 국정 최고기관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정치·행정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전문성은 물론이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며 합리적 대안을 찾는 노하우를 쌓은 인재다. 이들의 업무경험은 국가적 자산이다. 이런 자산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폐기 처분’하는 게 바람직할까.

'靑 경험' 국가자산 재활용해야

미국에선 백악관에서 근무했던 인재들을 공화당 출신은 헤리티지재단, 민주당 출신은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흡수해 이들의 경륜을 뽑아내 축적하고, 새로운 정책 개발에 활용한다. 보수와 진보의 양대 싱크탱크가 백악관 출신 ‘어공’들의 재충전소 역할을 한다. 이런 정치적 테크노크라트들의 재활용 시스템이 미국의 선진 양당 정치를 뒷받침하는 근간이란 분석도 있다.사실상 양당제가 뿌리 내려 민주적 정권교체를 수차례 경험한 한국도 다를 이유가 없다. 청와대 인재들을 일회용으로 쓰고 버려선 안 된다. 중·장기적으론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이 헤리티지재단이나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기능을 하도록 키우는 게 방법이다. 이런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 ‘어공’들의 공공기관 재취업을 무조건 ‘낙하산’으로 낙인 찍는 건 가혹하다.

물론 전문성도 없는 ‘함량 미달’ 인사가 ‘청와대 빽’만으로 공공기관 요직을 꿰차는 경우도 없진 않다. 그건 그것대로 솎아내면 된다. ‘청와대 낙하산’ 인사도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차병석 < 정치부 차장 chab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