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얼룩진 엄마와 딸…이별은 없고 용서만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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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달자 에세이 '엄마와 딸' 출간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는 뭘까. 한국시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신달자 시인(70·사진)이 어느 모임에서 꺼낸 주제다. 좌중의 절반은 부부, 절반은 ‘엄마와 딸’이라고 답했다. 가족관계 중에는 아빠와 딸도 있고 엄마와 아들도 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가 무촌 사이인 부부처럼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이별의 가능성이 늘 내재돼 있지만 엄마와 딸 사이에는 영원히 이별이 없다는 얘기도 나왔다.
처음부터 모녀 관계는 같은 性으로 출발한 한몸
신씨가 미워하고 사랑하며, 상처주고 미안해하는 복잡한 모녀 관계를 담은 에세이집 《엄마와 딸》을 내놓았다.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 모녀는 흔히 이처럼 가시돋친 말을 주고받고, 서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상처를 주는 관계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관계라고 그는 말한다.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을 살아온 그는 ‘딸로서 바라보는 엄마’ ‘엄마로서 바라보는 딸’ ‘엄마로서 바라보는 엄마’ ‘딸로서 바라보는 딸’의 네 가지 시선으로 그 관계를 고백하고 성찰한다. 책의 시작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참회록인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금도 저는 ‘엄마, 미안해’라는 말을 하고 또 해야 해요.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지 모르겠어요. 단 한 번도 고분고분 말하지 않았어요. 엄마! 저를 떠난 지 35년이 되어 가요. 그러니까 제가 엄마 없이 35년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말도 안 돼요.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니요. 이제야 알겠네요. 제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 왜 그렇게 외로웠는지. 엄마! 이 다음 세상에서는 내 딸로 태어나, 엄마! 그래서 엄마에게 했던 것보다 100배의 사랑을 주고 싶어!”
그는 세 딸을 둔 엄마다. 엄마의 이름으로 산 지 45년이 됐지만 지금도 ‘초보 엄마’라고 고백한다. 엄마에는 프로가 없다는 얘기다.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무조건 믿고 인내하고 사랑을 줘야 하는데 그 ‘무조건’이 잘 안 된다. 이 때문에 가끔 모녀 관계가 찌그러지거나 찢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와 딸은 처음부터 한몸에서 같은 성(性)으로 출발한 한몸 같은 존재다. 그는 책의 말미에 딸에게도 편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내 딸들아. 한 여자의 생이 저물고 한 마디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나는 너희들을 향해 ‘딸들아.’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을 것 같아. 그런 날 내가 너희 이름을 각각 부르지 않더라도 이해해라. 아마 힘이 없을지 몰라. ‘딸들아’라는 말 속에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가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