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연기금에 '스타 운용역'이 없는 이유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작년 말 행정공제회 대의원회는 대의원(시·도 지자체 공무원 54명)에게 지급하는 기본수당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했다. 기본수당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대의원회에 참석할 때마다 주는 수당이다. 대의원들은 여기에 안건수당이란 것을 추가로 받는다. 의결할 안건이 많을수록 수당도 올라간다.

행정공제회 기금운용인력들 사이에선 기본수당이 상향 조정된 데 대해 볼멘 소리가 나왔다. “다른 연기금이나 공제회와 비교해볼 때 운용인력의 연봉은 최저 수준인데, 자기들만 수당을 올리느냐”는 불만이었다. 서울 도심에 폭설이 내렸던 며칠 전, 대형 연기금의 투자팀장과 점심을 함께했다. 그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시계를 들여다 봤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까지 칼같이 복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관 입구에 있는 CCTV로 시간을 체크한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가 회원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운용하는 기금 규모는 수백조원에 달한다. 돈 냄새는 늘 부정과 섞이는 법이어서 이들에 대한 감시체계는 관할 정부부처, 감사원, 국회 등 이중·삼중으로 얽혀 있다. 퇴직 후엔 관련 업계 취직을 제한당한다. 감시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감시체계가 강화되면서 역설적인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감시자의 힘이 막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실에서 국민연금에 각종 투자 내역이 포함된 대외비 정보를 달라고 해도 연금에선 막을 방법이 없다. 그 문건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채 말이다. 감사원 권한도 무소불위다. ‘감사 실적은 매년 나와야 한다’는 명제에 따르다 보니 재탕·삼탕의 감사결과가 발표된다. 연기금 관계자는 “한 건이라도 목표 수익률에 미달하면 제재가 따르니 연기금 투자 담당자들의 운용원칙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요즘 글로벌 자본시장은 ‘빅 포켓(big pocket)’들의 전쟁터다. 저금리 시대에 돈은 넘쳐나니 좋은 투자 대상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최고의 수익률을 내기 위해 내로라하는 운용 전문인력을 영입하는 데도 혈안이다. 한국은 다르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운용역들을 머슴으로 취급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