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마키아벨리가 '권력慾의 화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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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마키아벨리 새롭게 조명당신은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대개는 권력, 권모술수, 현실 정치 등을 연상하거나 처세술과 같은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할 것이다. 사전은 마키아벨리즘을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10여년간 연구해온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는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즘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그의 사상 또한 사실은 약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놓은 신간 《마키아벨리》에서다.
권모술수 대가 아닌 '약자의 수호자'
인문학적 시각으로 읽은 '군주론' 은 더 당하지 말라는 약자에 대한 조언
마키아벨리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311쪽 / 1만8000원
이 책은 권모술수로 대표되는 마키아벨리의 이미지에 대한 ‘소수의견’이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대표작 ‘군주론’을 권력과 정치에 관한 책으로 읽는 것은 사회과학자들의 오독(誤讀)이며, 군주론은 약자의 시각에서 인문학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책은 약자의 시선으로 읽어야 한다. 그는 강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조언한 것이 아니라, 강자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고 조언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의 수호성자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을 ‘타인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쓸모 없는 인간’으로 여기며 철저한 약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를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보는 것은 잘못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마키아벨리를 시종일관 ‘우리들의 친구’라 부르며 변호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편견’의 감옥에서 구해내려는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인간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의 저작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가 직접 인용한 마키아벨리의 저작 ‘로마사 논고’와 ‘군주론’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는 비천하게 태어난 자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출세한 예를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즉, 모략만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나는 확고하게 믿고 있다.’
‘(대중을 이끌려면) 잔혹한 가해 행위를 여러 차례 행할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치르도록 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민심을 수습한 다음,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잡아야 한다. (가해 행위를) 짧은 시일 내에 끝내면 끝낼수록 그만큼 대중의 분노도 쉽게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은혜는 민중이 오랫동안 음미하도록 조금씩 베풀어줘야 한다.’
이처럼 마키아벨리가 그의 저작에서 도덕을 배제한 냉혹한 권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저자 역시 그러한 부분을 많이 인용한다. 인간 마키아벨리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게 곧 ‘그의 사상이 약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 책의 미덕은 오히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아닌 ‘인간’ 마키아벨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저자는 수백번의 강연을 펼친 이답게 마키아벨리의 삶과 당시 유럽의 역사적 배경을 알기 쉽게 풀어놓는다. 자칫 어렵게 읽히기 쉬운 주제지만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문체로 한 인물의 일대기를 ‘옛날 이야기’처럼 서술했다.
관심은 있지만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던 마키아벨리에 대한 입문서로 알맞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을 이미 읽은 독자는 그에 대한 소수의견 혹은 보완의견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다만 기존과 다른 새로운 의견인 만큼, 이 책의 주장과는 다른 다수의견이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는 게 좋겠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