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감성美 세계를 홀리다

Car & Joy - 2013 북미 오토쇼 '코리안 디자인 파워'
전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는 모두 몇 명일까요? 글로벌 5위 안에 드는 큰 회사도 디자이너는 100여명에 불과합니다. 자동차회사를 다 합쳐도 기껏해야 2500명 정도죠. 회사별로 3~4년에 한 명 뽑을까 말까 하다니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이 분야에는 ‘정년’이란 게 없기 때문이죠. 올해 환갑인 피터 슈라이어 형님(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 사장)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니 말입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돼도 자신이 디자인한 차가 실물로 만들어지는 걸 보기는 더 힘듭니다. 평생 수천 장의 작품을 그려도 한 대가 양산될까 말까 하다고 하니…. 이런 ‘살벌’한 세계에서 코리안 파워가 활약하고 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코보센터에서 개막한 ‘2013년 북미 오토쇼’의 월드 프리미어 차종(세계 최초 공개 모델) 중 3개를 한국인이 디자인했다는 사실! 제가 대신 자랑 좀 해보렵니다. ○불꽃 같은 정열을 지닌 도요타 ‘퓨리아’

저도 오토쇼장에 가서야 이 차를 한국인이 디자인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도요타 코롤라를 기반으로 만든 콤팩트 세단인데, 미국 도요타 칼티(CALTY) 디자인 리서치 센터에서 일하는 김진원 프로젝트 디자인 매니저(39)의 작품입니다. 콘셉트를 물어봤더니 “직접 눈으로 보라”고 하시더군요. 퓨리아라는 이름은 ‘불꽃(fire)’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불타는 오렌지 빛깔이 이글이글거려서 눈이 시릴 정도랍니다. 전시장의 모든 색깔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블랙홀’ 아니 ‘레드홀’ 같은 차였죠. 양산될지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이름 바꾸고 다이어트한 인피니티 ‘Q50’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인피니티 Q50은 G시리즈의 후속 모델입니다. 인피니티는 이제 세단에 Q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모델명 앞에는 QX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아우디맨’ 출신으로 지난해 부임한 요한 드 나이슨 인피니티 사장이 이렇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는데요. 아우디 Q시리즈와 헷갈리면 어쩌죠? 어쨌든 디자인을 보면 군살은 빠지고 날렵해졌습니다. 백철민 디자이너(34)는 “둔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앞 그릴도 고급스러워졌어요. 뒷문에 2개의 라인으로 살짝 포인트를 준 부분은 빛을 받으면 음영이 생기는데 정말 멋지답니다. 3.7ℓ V6 엔진을 단 가솔린 모델은 최고출력이 무려 328마력! 3.5ℓ 엔진의 하이브리드 모델도 있다네요. 올여름부터 북미 시장에서 판매하는데 국내에도 빨리 출시됐으면 좋겠어요.

○고정관념을 깬 럭셔리 BMW 4시리즈 쿠페

‘이건 분명 철판으로 만들지 않았을 거야.’ 이 차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에 이런 곡선이 가능하다니. 물 흐르듯 우아한 곡선으로 이뤄졌는데 물렁해 보이지 않고 단단하고 힘이 넘칩니다. BMW 3시리즈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지만 차별화하려고 4시리즈로 이름 붙였죠. 3시리즈 쿠페보다 지붕이 낮아 당장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차체와 아슬아슬하게 연결돼 있는 사이드 미러는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아서 아찔함마저 들게 합니다.

조각처럼 안쪽으로 정교하게 새겨넣은 문 손잡이도 예술이죠. 앞 범퍼와 뒷 범퍼 아래 그릴은 어디든 ‘쿵’하고 들이받아도 멀쩡할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차체에 선이 많은데 복잡하거나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게 신기했어요. 같이 사진 찍자는 자동차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통에 강원규 디자이너(38)의 인기는 최고였죠.

디트로이트=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