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조직개편 로비 '사활'…"인수위 어려우니 국회서 뒤집자"

장관이 직접 접촉…'표심' 이익단체도 동원
소관 상임위인 행안위 소속 野의원 주 타깃

서규용 장관·김기문 회장, 박기춘 민주 원내대표 면담
한 정부부처는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의 프로필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엔 의원들의 출신지역, 학교, (해당)부처와의 친소관계, 평소 성향 등이 적혀 있다. 소위 ‘로비 리스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15일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라 ‘쪼개지고’ ‘사라지는’ 등 변화가 많은 부처의 기능을 살리기 위한 전방위 로비에 나서고 있다.

이 부처가 행안위 소속 의원들의 프로필을 만든 건 정부조직법을 다루는 소관 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원래 인수위원들이 로비대상이 되는 게 정상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보안 강조’ 원칙에 따라 인수위원들에 대한 로비가 여의치 않다.그렇다 보니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정부부처의 로비 대상이 되고 있다. 행안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박 당선인에게 밉보일까봐 5년 전에 비하면 많이 줄긴 했지만, 정부부처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맞다”며 “행안위 소속 의원들을 찾아와 조심스럽게 부처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로비엔 국회에 파견된 부처 공무원이나 담당 실·국장이 나서지는 않는다. “박 당선인이 확정한 조직개편안을 공무원들이 나서 반대할 경우 새 정부 5년간 각오를 해야 하는 만큼 부담스럽기 때문”(한 부처 공무원)이다. 이에 따라 장관들이 직접 의원을 만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부처들이 직접 나서기도 하지만, 부처와 관련이 있는 이익단체를 동원하기도 한다. 특히 여당보다는 야당 의원이 주 로비의 타깃이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은 박 당선인이 정한 것에 대해 반기를 들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21일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면담했다. 서 장관은 ‘인수위에 말하지 왜 여기 와서 말하느냐’는 박 원내대표의 말에 “인수위에 말할 데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부 신설이 어려우면 총리실 산하 소기업위원회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다른 부처들도 박 원내대표,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 각 상임위원장 등에게 면담 요청을 잇달아 하고 있다.

민주당 행안위 소속 의원실에는 하루에 조직개편과 관련해 수십통의 전화와 이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해당 의원실 보좌관은 “아침에 출근해서 이메일을 열어보면 수십통의 메일이 쌓여 있다”며 “부처에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오전에만 10통 이상 된다”고 했다.

통상 기능을 지식경제부에 넘길 처지에 놓인 외교통상부 등이 주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인수위에 공식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지만 통상 기능을 경제부처로 이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분명히 인수위에 전달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안호영 1차관이 지난주 인수위를 방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외교부는 조직 개편에 따른 세부 업무 분장에서 적어도 현 통상교섭본부가 가지고 있는 통상 관련 교섭 및 조약체결권은 외교부가 그대로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연구·개발(R&D) 정책 기능 일부를 미래창조과학부에 이관하는 지경부도 좌불안석이다. ICT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부내 기능 재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경부는 정보통신국 아래 7개과 중 제조업과 관련이 깊은 전자산업과와 반도체디스플레이과는 지경부가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안전부 등으로의 이관설이 나오는 우정사업본부를 지키는 데 힘쓰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외부에 발이 넓은 몇몇 간부들을 중심으로 지경부 측 입장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방통위 기존 조직을 대거 흡수해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디바이스(D)를 통합 관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 ICT 진흥 기능과 함께 주요 규제 기능도 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ICT 산업의 특성상 진흥과 규제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따로 떨어져 있으면 업무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정보통신부가 관할했던 우정사업본부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일각에서는 국회 논의과정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ICT 전담부처인 ‘정보통신미디어부’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국회 입법과정에서 ICT 전담부처 안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재후/이정호/양준영/허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