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자애들 셔츠 꿰매주다가 아들 그리워 눈물 흘린 수치

아웅산 수치 평전
피터 폽햄 지음 / 심승우 옮김 / 왕의세재 / 744쪽 / 2만5000원
“독재에 신음하는 조국의 현실 앞에 한 가정의 어머니 자리는 사치였습니다.” “엄마로서 치러야 했던 가장 큰 희생은 아이들을 포기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다른 동지들은 저보다 훨씬 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웅산 수치 평전》은 군부 독재에 맞서 버마(미얀마)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아웅산 수치의 삶과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기자인 저자는 버마를 20여년간 취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수치 여사와 가족, 친구와 지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놓는다. 책은 2010년 11월13일 수치가 15년간의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해제된 순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19세기 영국의 지배를 받던 버마의 역사적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45년 버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나 가정주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다가 1988년 정치에 투신해 비폭력 운동으로 버마 민주화를 이끌어온 수치의 일대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저자는 ‘정치인’으로만 보여져온 아웅산 수치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모습을 생동감있게 전한다. 여기에는 2010년 우연히 입수해 이 책에 자세하게 소개한 ‘마 떼잉기’의 일기가 한몫하고 있다.

1989년 버마 총선 유세 기간 수치의 수행비서이자 단짝이었던 마 떼잉기는 그와 동고동락했던 여정을 미출간된 일기에 세세히 기록했다. 매서운 추위에 떨며 옥스퍼드의 난방 기구가 그립다고 투정 부리고, 긴장을 풀기 위해 마신 술에 취해 음식을 게우는 모습, 남자 애들의 셔츠를 꿰매주다 멀리 두고 온 두 아들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 수치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난다. 이 책은 정식 국호인 미얀마 대신 버마를 국가명으로 표기했다. 1989년 군사정권이 개명한 나라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수치 여사의 뜻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도 “세계가 버마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자신의 조국을 미얀마 대신 버마로 불렀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