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맥·치맥 즐기다간…바람만 스쳐도 '통곡' 합니다

뚱뚱한 40·50대 '통풍' 주의보

요산 쌓이면서 관절염증…시뻘겋게 붓고 밤에 특히 통증
아스피린·결핵약도 발병 원인

탄산음료·주스 통풍 악화…하루 2리터 이상 물 마셔야

중소기업 부장인 한모씨(53)는 지난 연말 건강검진에서 요산수치가 10~12㎎/㎗로 나와 고요산혈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통풍(痛風)’을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요산수치가 정상(남성 8㎎/㎗, 여성 7㎎/㎗)보다 높은 한씨는 지난 연말 술자리가 예전보다 많았던 점을 떠올렸다.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가 많았는데 폭탄주, 치맥(치킨·맥주)을 즐겨 먹었다. 가끔씩 늦은 밤이면 발가락과 발목관절 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오곤 했지만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중년 남성들 사이에 통풍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7년 통풍으로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람은 16만3167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1년 24만638명으로, 5년 새 무려 49%(7만7471명) 급증했다. 남성 통풍환자(21만8875명)는 여성 통풍환자(2만1763명)의 9배나 됐다.2012년의 경우 상반기까지 통풍 환자 수가 17만3368명으로 조사됐다. 심평원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통풍 환자 수가 27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통풍 환자 두 명 중 한 명은 40~50대 남성이다.

◆통풍환자 10년 만에 3배

통풍 환자는 2002년 8만2000명에서 10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육류를 많이 먹는 서구식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불러온 결과다. 통풍은 흔히 요산이 넘쳐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체내 요산 수치는 퓨린(purine·음식으로 섭취하면 몸에서 분해돼 요산으로 바뀐다) 함유량이 높은 음식을 먹으면 급격히 높아진다. 퓨린은 주로 치킨 삼겹살 등 육류에 많이 함유돼 있고, 특히 맥주는 술 중에서 퓨린 함유량이 가장 많다. 체내에서 요산이 남아돌면 가시 돌기처럼 크리스털화(化)돼 관절과 관절을 싸는 막에 침착되고 염증을 불러일으킨다. 통풍이 생기면 90% 이상이 밤에 갑자기 엄지발가락, 발목, 무릎 등이 시뻘겋게 붓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프다. 특히 통풍성 관절염에 걸리면 밤에 관절 부위가 쑤시고 뻣뻣해지고 부어오르며, 심한 환자는 옷깃만 스쳐도 굉장한 고통을 느낀다. 통상 엄지발가락 뿌리 부분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요산이 중력의 영향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타고 몸의 가장 아랫부분인 엄지발가락에 쌓이면서 발작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부 결절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송정수 중앙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최근 몇 년 새 통풍에 걸리는 40, 50대 중년 남성이 급증하고 있다”며 “여성은 여성호르몬이 요산 제거 능력을 키워줘 상대적으로 통풍에 적게 걸리지만, 중년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콩팥에서 요산을 소변으로 걸러내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요산은 △비만 △과식과 과음 △붉은색 육류와 해산물 과다 섭취 등의 경우에 급격히 올라가 통풍으로 이어진다. 잦은 고기 회식과 운동 부족,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 중년 남성의 상황이 통풍이 생기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다.

송 교수는 “통풍은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심하게 왔다가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져 많은 남자가 괜찮겠지 하고 버티다가 증세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초기 치료 안하면 합병증 유발

통풍은 4단계를 거쳐 증상이 악화된다.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요산이 점점 축적되는 ‘무증상 고요산혈증’으로 시작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급성 통풍성 관절염’ 증세로 발전한다. 그후 오랜 시간에 걸쳐 통증이 간간이 나타나는 ‘간헐기 통풍’을 거쳐 관절 주변에 요산 결정이 맺히는 ‘만성 결정성 통풍’으로 악화된다. 요산 결정이 인대와 관절 안쪽까지 침착해 굳은살이 박힌 것처럼 보이고, 하얀색의 요산덩어리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통풍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관절 이외의 다른 부위에까지 통풍결절이 생겨 간단한 젓가락질조차 힘들어질 수도 있다. 특히 통풍으로 쌓인 요산이 신장으로 배설되면서 신장에는 계속 상처가 생기는데, 이로 인해 신장 기능 역시 점차 떨어지게 된다. 황은천 구로예스병원 원장은 “통풍이 악화될수록 신장을 비롯한 신체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고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동맥경화 등 전신성 대사 질환이 동반된다”며 “통풍을 단순한 관절염으로 생각하고 치료를 늦추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뇨제·아스피린·결핵약도 조심

전문의들은 통풍을 악화시키는 최악의 요인으로 맥주가 섞인 폭탄주를 꼽는다. 요산 성분인 퓨린의 함량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또 이뇨제를 복용하는 고혈압 환자도 통풍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데, 이뇨제는 신장에서 요산이 배설되는 것을 억제한다. 최근에는 아스피린이나 결핵약도 요산 배설을 억제해 통풍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통풍은 약물치료를 통해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약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요산 수치가 올라가고 통풍 발작이 일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생 복용해야 한다.

한번 걸리면 고혈압·당뇨병처럼 평생 조절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아직까지는 장기 복용해도 심각한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통풍을 예방하려면 과음과 과식을 피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최고다. 혈액 속에 있는 요산이 증가하지 않도록 하루 2ℓ 이상의 물을 마시면 더욱 좋다.

송 교수는 “퓨린이 많이 들어 있는 소고기 돼지고기를 포함한 육류, 특히 간과 내장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는 안된다. 새우 바닷가재 청어 정어리 고등어 꽁치 등도 과식하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음료수 중에도 과당이 많이 포함된 콜라 사이다 등 청량음료와 과일 주스는 요산을 증가시켜 통풍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커피는 요산 배설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 보리 밀 메밀 감자 고구마와 같은 곡류,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 김이나 미역 같은 해조류, 과일과 두부 등을 균형있게 먹으면 통풍 예방에 도움이 된다. 물론 운동은 필수다. 땀을 적당히 흘릴 수 있는 유산소운동이 좋다. 빠르게 걷기, 자전거 타기, 가벼운 등산, 수영, 산책 등이 좋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송정수 중앙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