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연료 가격따라 전기료 조정…'연료비 연동제' 도입해야"

새 정부 '에너지 정책' 어떻게 짜야하나

전기료 원가산정 잘못…낮은 요금으로 '쏠림' 심화
석유·가스·석탄 등 에너지와 가격균형 우선 맞춰야
"올해만 넘기면 되겠지"…안일한 생각으론 해결 못해
각종 에너지세제 묶어 '통합에너지稅'로 관리해야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수급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전 연료의 가격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연료비연동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석유 가스 전력 등 에너지원별 이상적인 ‘역할 분담(mix)’을 위해 각종 에너지세제를 ‘통합에너지세’로 묶어 투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신문은 27일 현재의 전력수급 위기를 진단하고,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바람직한 에너지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권식 한국전력 미래전략처장,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가나다 순) 등이 참석했다.▷사회=올겨울 날씨가 유난히 추워 블랙아웃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현 에너지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위원=빗나간 수요예측이 첫 번째 원인이다. 2002년 제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망치를 보면 2011년 수요량이 363테라와트(TW)였다. 하지만 실제 수요량은 이보다 25% 많은 455TW였다. 2009, 2010년 산업용 전력소비 증가율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수도권 중심으로 제조업 가동률이 꾸준히 올라 산업용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시스템이 최근 2계절(여름·겨울)로 바뀌면서 냉난방 전력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2008년 이후 고유가로 유류가격과 전기요금 사이에 세워졌던 댐에 균열이 생기다가 지금은 완전히 무너져 유류 소비의 상당량이 전력으로 대체되고 있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위원=이런 전력쏠림 현상은 유가 상승 등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전기요금을 탄력적으로 연동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값이 싼 전기로 에너지 수요가 몰리는 소비 왜곡 구조가 형성돼있다.

▷사회=전기요금만 올리면 수급 위기를 해결할 수 있나.

▷박권식 한전 처장=최근 1년 사이 두 번의 전기료 인상이 있었지만 전기요금은 여전히 생산원가를 밑돌고 있다.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본다. 전기요금의 적정 수준 못지않게 석유 가스 석탄 전력 등 주요 에너지원 간 가격 균형을 맞추는 게 우선 순위다.▷조영탁 한밭대 교수=좋은 지적이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보면 유가가 2~3배 올라도 에너지 소비가 전력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OECD 회원국보다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

▷석 위원=고유가와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줬던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은 경제성장률이 5.1%에서 0.3%대로 내려앉았지만 전력판매량은 오히려 6.6% 늘어났다. 한국과 같이 에너지를 수입하는 일본은 경제성장률 하락과 함께 전력판매량도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의 전력산업 구조 및 가격체계가 외부 경제 충격에 탄력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박 위원=한전이 올해 전기요금을 5%만 추가로 올리면 원가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원가를 보전해 준다고 지금 같은 왜곡된 에너지소비 구조가 바로잡힐 거라고 보지 않는다. 전기요금 수준을 정하는 기본 원가 산정이 적절하지 않다. 환경오염, 송전선로 건설 비용까지 감안하면 현재의 전기요금은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사회=전력쏠림 현상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김 교수=전력쏠림 현상이 겨울철 전력수급 파동 정도로만 인식되고, 올해만 넘기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최근 수요 패턴을 보면 전력수요가 어느 선까지 늘어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지금 상태라면 송배전망 포화로 수도권 산업단지 입지를 전면 재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전기요금은 수요는 늘리고 공급력 확충은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요금 정상화로 전기에너지 수요를 합리화시켜야 한다.

▷조 교수=전력 수요예측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전력 수요 증가량만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 등 다른 에너지원의 상대 가격 변수를 집어넣어 예측해야 한다. 장기적인 유가 변동에 따라 유류 소비가 얼마만큼이나 전력으로 대체될지를 미리 예상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박 처장=전기요금을 규제하는 절차나 산정하는 방식을 현재보다 더 투명하고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전력회사의 요금 인상안을 받아 6개월~1년에 걸친 토론, 공청회 등을 통해 인상안의 적정성을 평가한다.

▷박 위원=현재 1년 넘게 시행 보류 중인 연료비연동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료비연동제는 석유·유연탄·가스 등 발전원료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정부가 제도 도입을 승인해놓고 물가 자극을 이유로 시행을 보류하고 있지만 원가를 반영한 요금구조 정착을 위해 시행할 때가 됐다.

▷사회=새 정부의 에너지정책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야 할까.

▷석 위원=저소득층의 에너지 복지 확대에 힘써야 한다. 현재 등유 등 난방유에 대한 중과세가 문제다. 난방용 에너지원으로 등유를 쓰는 가구가 최소 300만가구에 달한다. 이 가구들이 비싼 가격 때문에 등유를 제대로 쓸 수 없어 상당수가 난방을 전력에 의존하고 있다. 골프채 모터보트에도 면세되는 소비세가 등유에 과세되는 것도 문제다.

▷조 교수=전력 생산원인 원전, 석탄, 가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어떻게 조화롭게 믹스(mix)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유류세는 낮추고, 전력관련 세금을 올려 유류와 전력 간 상대 가격을 적정 수준에 맞춰야 한다.

▷박 처장=석유 전력 등 에너지 가격의 상대적 불균형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에너지원 간 가격을 합리화하면 에너지 시장의 많은 비효율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위원=생산원가 및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반영된 전기요금 산정이 급선무다. 이런 식의 가격합리화는 결국 가격인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한전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요금할인 제도보다 소득지원 강화나 전기 이용효율 개선사업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김 교수=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에너지 믹스 및 각 에너지원 간 요금 설정에 대한 큰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그널이 왜곡된 에너지 소비구조를 바로잡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를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에너지원별 세금징수도 문제다.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각종 에너지세제를 하나의 ‘통합에너지세’로 묶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산당국이 모든 에너지원을 통합세원으로 관리해 이상적인 에너지 믹스를 위한 투자 우선 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정리=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