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민'의 빛과 그림자, '제주살이' 좋지만…이주민의 고민은?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됐다.

2009년까지 제주는 들어오는 인구보다 나가는 인구가 많았지만 2010년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2011년에는 2340명, 2012년은 4873명 등 3년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최근 3~4년 사이 제주 이주는 붐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민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말은 경기도 과천으로 보내는 시대가 됐다. 이들 이주민들은 갓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뿐만 아니라 30~40대로 훌쩍 내려앉은 것이 눈길을 끈다. 가정에선 아이 키우고 회사에선 실적 쌓느라 바쁠 나이에 높은 연봉과 성공이 보장된 미래, 각종 문화적 혜택을 버리고 굳이 ‘사서 고생’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경치에 반해, 인생 반전을 꿈꾸며 제주 입성

이처럼 한창 일할 나이에 외딴섬에 옮겨와 인생 2막을 펼치는 현상을 일컬어 ‘다운시프트(downshift)’라고 칭한다. 다운시프트는 자동차 기어를 고속에서 저속으로 낮춘다는 뜻으로, 출세와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기보다 삶의 여유를 찾는 마음가짐이다.이들 중에서도 유형이 나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대도시에 지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유(U)턴,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 지내다가 덜컥 귀촌하는 제이(J)턴 등 다양한 양상을 띤다. 아이들을 데리고 물을 건넌 30~40대 젊은 부모들도 적지 않다. 연고도 없는 외딴섬까지 가족 대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체로 “내 아이만큼은 도시가 아닌 곳에서 키우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올레를 걷다가 제주에 반해 삶터를 옮긴 사례도 잦다. 1박 2일 주말여행이 2주짜리 배낭여행이 되고 알음알음 집을 얻어 덜컥 눌러살기 시작한 이주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제주 섬 곳곳에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등을 열면서 ‘문화이주’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들이 짐을 푼 곳은 제주 시내 번화가가 아닌 밭 혹은 바닷가가 펼쳐진 시골 마을이다. 수십 년 이곳에서 살던 이들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경치에 혀를 내둘렀다. 전 세계를 다니며 여행깨나 해봤다는 이들은 제주에서 ‘뭔가 다른’ 것들을 발견했다.

단순한 숙박 업소나 음식점이 아닌 ‘문화’를 채운 공간을 꾸미며 자신이 보고 겪고 느낀 것을 제주에 풀었다. 이들 문화 이주자들이 시작한 날갯짓은 제주의 문화 지형을 바꿔가고 있다. 문화 불모지로 일컬어지던 제주를 새싹이 트도록 일궈가고 있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겠다며 시골행을 택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2005년 7가구에 불과하던 귀농·귀촌 가구는 2010년까지 한해 40~60가구 수준으로 열 배 가까이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제주 지역 귀농 가구는 253가구(447명)에 이른다.

한때 도시인들 사이에서 귀촌이나 귀농은 은퇴하고 나서, 혹은 더 이상 뭔가 할 게 없을 때 택하는 수단으로 꼽혔다. 최근엔 먹고살 수단이 없을 때 고르는 마지막 선택이 아닌 ‘새로운 선택’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저 빠른 것이 덕목인 패스트 라이프(fast life)에 지친 현대인들 사이에서 인간적 삶의 질을 중시하는 ‘참살이’, ‘힐링’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영향도 크다.

이처럼 수요가 점차 증가하자 제주도나 기타 기관에서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농협이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꾸리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지만 제주도농업기술원 교육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결혼 5년 차인 윤민상(34)·이선자(33) 부부는 귀농을 작정하고 제주에 왔다. 제주에 온 지 아직 1년이 채 안 됐다.윤 씨가 “정착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벌써 제주 사람 다 됐다. 이들이 신혼살림을 차렸던 충북 청원급 오창읍은 이제 막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신도시다. 9000만 원에 83㎡(25평)짜리 새 아파트에 전세를 얻었다. 5년 동안 전셋값이 3000만~4000만 원을 웃돌았다.

윤 씨는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대출을 받기도 했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월급이 깎이는 것과 똑같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아내와 함께 시골에 가서 농사짓는 걸 꿈꿔 오던 차에 우연하게 제주 우도에 왔다가 ‘이곳이다’ 결심하게 됐다”고 제주로 이주 온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 부부가 둥지를 튼 곳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축산 농가가 많아 냄새가 나는 동네로 유명하다. 조그만 아파트에 전세로 살다가 마당 합쳐 397㎡(120여 평)가 되는 집을 얻었다. 텃밭도 가꿀 수 있는 데다 개와 닭도 기르고 있어 무엇보다 만족이다.

시사 블로거 임병도 씨는 제주에 온지 6년째 접어들었다. 막연한 귀촌을 생각하다가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제주를 택했다. 그는 “제주가 과연 살기 좋으냐고 물으면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하겠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주민 정책도 중요하지만 마을에 대한 정책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며 제주 이주민을 배려하는 정책보다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구좌읍 송당리다. 임 씨의 설명에 따르면 송당초등학교 전교생 수는 43명. 이 중에서도 15명 정도가 이주민 가정이 오면서 늘어났다. 이주 온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주에서 가장 좋은 점으로 꼽는 것이 ‘소규모 학교’다.

임 씨는 “우리 아이만 해도 1학년 한 반에 7명이다. 과외 수준으로 수업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육 부문에서 제주도에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다. 송당초등학교는 2010년 통폐합됐다. 우리 아이 반이 한 반에 7명인데 20명으로 늘리겠다는 것. 장점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가 지적한 것은 의료 서비스 문제. “구좌읍에는 소아과가 하나도 없다. 아이가 아프면 갈 데가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이주 11년 차인 김태진 씨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지만 제주에서 마땅한 직업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5년 게스트하우스를 열었지만 운영 미숙으로 금세 닫고 말았다. 이것만 가지고선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던 것. 그러다 제주 여행 혹은 이주 상담, 레저 체험 프로그램 등을 엮어 지난해 제주 원도심에 다시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블로그와 외국 숙박 사이트에 부지런히 홍보한 덕분에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다.


제주 이민, 계획 없으면 낭패 보기도

제주에 건너오려고 하거나 이미 건너온 사람들 사이에선 제주 이주를 가리켜 ‘이민’이라고 한다.

이주는 원래 살던 지역에서 다른 곳에서 넘어가는 것을 뜻하지만 이민은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제주에 오는지 짐작되는 표현이다. 이 때문에 충분한 준비 없는 이주는 실패로 그치기 십상이다. 이와 관련해 정영태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원은 2011년 귀농·귀촌과 관련한 보고서가 나왔다. 제주에 오면서 무엇을 준비했는지 조사한 결과를 사례로 들었다.

정 연구원은 “이주민들이 대체로 뭘 하고 살 것인지 고민하고 와야 하는데 그 고민을 하지 않는다. 자녀 문제만 고민하는 이가 대다수다. 교육과 주거, 자녀 세 가지를 가장 많이 준비하고 온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이들이 제주에 와서야 ‘농사나 해볼까’ 라며 영농 교육을 받으며 준비한다. 그 기간 동안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실질적인 소득이 없다면 본인의 자산을 쓴다. 또한 마음이 급해 선택한 작목이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을 보탰다.

미술 치료사이자 커뮤니티 아티스트인 정은혜(40) 씨는 2010년 가시리 창작스튜디오 작가로 처음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마냥 황홀하기만 했던 제주에서의 생활도 2년 차에 접어들자 고민에 부닥치게 된다.
보통 이주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다. 제주살이 첫해는 제주의 경치에 감격하다가 지나가고 2년부터 약간 지루해하다가 3년 차엔 끝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이가 많다.

정 씨는 “‘난 아니겠지’라며 넘겼는데 1년 반 정도 지나니 슬슬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정 씨는 “제주의 자연을 보고 그저 감탄하는 데서 벗어나 무엇이든 생산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에 산다는 것을 기쁨의 대상으로만 남겨 놓아서는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