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뒤집어라…미래의 기회를 잡고 싶다면

"역혁신 마인드를 가져라"…상품·기술·서비스 혁신
선진국 중심 고정관념 벗어나 신흥 개발국서 먼저 도입해야 결국엔 시장 파이도 커져

"가난한 시장이라고 얕보지 마"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 인도 전통의학 처방전서 응용
GE '휴대용 의료영상기기', 중국 맞춤형 출시 후 글로벌 성공

리버스 이노베이션

비제이 고빈다라잔 외 지음 / 이은경 옮김 / 정혜 / 352쪽 / 1만6000원

인도의 나라야나 흐루다야라야병원(NH병원)은 미국에서 2만달러 이상 드는 개심(開心)수술을 단돈 2000달러에 시행해 인도 내 의료서비스를 확 바꿔놓았다. 수술 비용이 초저가인데도 이 병원의 순이익률은 미국 병원의 평균보다 높다. 의료 서비스 수준도 최상급이다. 심장우회수술을 받은 후 30일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1.4%로 미국(1.9%)보다 낮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인도의 값싼 인건비는 이 병원의 성공 요인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진짜 중요한 요인은 프로세스 혁신이었다. 표준화, 분업, 규모의 경제, 조립라인 생산 등 제조업의 개념을 병원에 도입해 수술비용을 대폭 낮췄던 것. 그 결과 환자가 늘어나 글로벌 기업이 만든 고가 의료장비를 미국보다 5배 더 자주 사용하게 됐고, 외과의사들은 2~3배 더 많은 수술을 실시한다. 병원이 크기 때문에 의사들이 심장 수술 중 특정 유형에 전문화돼 있는 것도 장점이다. NH병원은 이처럼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선진국에 적용,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인들이 기존 병원의 50% 이하로 치료받을 수 있는 2000병상 규모의 대형 병원을 마이애미 인근 케이맨제도에 짓고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의 비제이 고빈다라잔 석좌교수와 크리스 트림블 교수는 《리버스 이노베이션》에서 이런 사례를 들려주며 “미래는 머나먼 타국에 있다는 새로운 현실에 눈떠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진국과 기존의 글로벌 기업들이 계속 번성하려면 자국의 필요와 기회를 알고자 하는 만큼 신흥개발국의 필요와 기회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책 제목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은 상품과 서비스의 혁신이 선진국에서 시작해 시차를 두고 신흥개발국으로 번져가는 지금까지의 패턴과 달리 신흥개발국에서 먼저 혁신이 도입되는 것을 뜻한다. 책에서는 이를 ‘역(逆)혁신’이라고 번역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역혁신의 이론적 기초와 교훈, 기업에서 적용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역혁신의 실행방법과 지침을 전해준다. 저자들이 먼저 강조하는 것은 선진국 중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도 그렇게 나온 역혁신의 사례다. 게토레이는 1960년대 플로리다대 미식축구팀 ‘게이터(The Gators)’의 선수들 몸에 물보다 빨리 수분을 공급할 방법을 찾다가 탄생했다. 축구팀의 요청을 받은 플로리다대 연구소가 물, 포도당, 나트륨, 칼륨, 향료를 혼합한 음료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는 이 연구소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게 아니라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서 콜레라로 인한 설사를 다스리는 전통의학(아유르베다)의 처방을 응용한 것이었다.

2011년 월마트는 소규모 매장 개념을 미국에 도입했다. 대형할인점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임대료가 높아 도시별로 대규모 매장을 한두 곳 운영하는 것보다 소규모 매장을 여러 곳에서 운영하는 게 쉽고 이익도 많아서였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는 월마트가 중남미 신흥시장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소비자들은 물건을 많이 사서 쌓아놓을 만큼 돈이 없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나 버스를 많이 이용하므로 아담한 크기의 매장을 선호했다. 할인점은 매장이 커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깬 혁신이 신흥시장에서 선진국으로 역류한 것이다. 저자들은 “신흥시장에는 엄청난 기회가 존재하지만 선진국과는 완전히 다르므로 역혁신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신흥시장과 선진국시장의 다섯 가지 차이, 즉 성능·기반시설·지속가능성·규제·선호도의 차이를 파악해야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가의 대형 초음파 진단장치를 제공하는 선두주자였던 GE헬스케어가 2010년 초음파 기술을 이용하는 휴대폰 크기의 의료영상기기인 ‘브이(V)스캔’을 내놓은 것은 중국에서의 실패와 역혁신의 결과였다. 엄청난 잠재력과 달리 중국에선 대형 진단장치가 팔리지 않자 중국의 시장 특성에 맞는 이동식 초음파 기기를 2002년 출시해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주류 시장인 미국에도 공급하게 됐다.

따라서 저자들은 ‘신흥시장으로 수출하기’에서 ‘신흥시장을 겨냥해 혁신하기’로 마인드를 바꾸라고 조언한다. 또 신흥시장에서 단행한 역혁신을 다른 신흥시장, 선진국 내 비주류 시장, 선진국 내 주류시장으로 확산시키고 신흥시장의 거대기업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인다.책에는 로지텍, 프록터&갬블, EMC 코퍼레이션, 디어&컴퍼니, 하만인터내셔널, GE헬스케어, 펩시코, 파트너스 인 헬스 등 8개 기업 역혁신 사례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계열사 임직원 2000여명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하는 기업 관계자라면 꼭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