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FIU 금융거래 정보, 국세청에 제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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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키로 하면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확보하고 있는 금융거래 정보의 공개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FIU에는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 내역과 1000만원 이상의 계좌 이체, 현금 거래 가운데 범죄와 자금세탁 등의 혐의가 의심되는 모든 거래 내역이 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보고된다. 이 중 국세청이 세무조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FIU 자료는 극소수다. 2011년 FIU에 보고된 1000만원 이상의 탈세혐의 거래 32만9463건 가운데 2.3%인 7468건만 국세청으로 통보됐다. 지난해 FIU에 통보된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만 무려 210조원에 이르지만 국세청은 이를 아예 볼 수도 없다.
국세청은 2009~2011년 3년 동안 FIU에서 통보받은 일부 자료만으로도 세무조사를 통해 4318억원을 거뒀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은 FIU에 보고된 모든 거래정보를 활용해 세무조사에 나서면 연간
최소 4조원, 최대 10조원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보,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FIU 정보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반면 FIU를 산하에 둔 금융위원회는 국세청의 과도한 정보 집중과 금융정보 비밀보장 훼손에 따른 사생활 침해, 다른 목적으로의 유용 가능성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FIU에도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했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도 소관 상임위원회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국세청이 소속된 기획재정위원회는 찬성을, 금융위가 소속된 정무위원회는 유보적이다. 차기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세입을 확대하고 경제 전반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에도 불구, 이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찬성 지하경제 양성화 최적 수단…4조~6조원 세수증가 가능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막대한 재정지출이 예상된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충당해 나갈 것인지가 차기 정부가 직면한 과제다.
정부의 지출 구조를 개선하고 조세 감면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대한 각종 연구와 지금까지 정부가 감면을 축소하기 위해 수행한 노력을 종합해 보면 이 분야에서 달성할 수 있는 세수 확보는 초라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국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채발행은 단기적 경기변동에 대한 대책이지 정부지출 구조의 장기적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사회복지지출 증가는 단기간의 지출 증가가 아니라 지출 구조의 장기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재원조달 방안으로서 국채발행은 적절하지 않다.
결국 국채발행이나 비과세 감면 축소보다는 지하경제 양성화에 힘쓰는 것이 사회정의에 더 부합하며 세수 확보의 가능성도 큰 방안이다. 반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서 가장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세율 인상은 세금 부담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납세자를 크게 구분해 소득을 성실하게 신고하는 성실집단과 대부분을 신고하지 않는 불성실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면, 세율 인상으로 추가적 부담을 떠안는 집단은 필시 성실집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세금을 탈세하고 있는 납세자가 세율이 올랐다고 더욱 성실하게 신고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고액의 현금거래 정보 일반 납세자와 관련 적어
세율 인상에 앞서 지하경제를 과세권으로 편입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최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조세정의에 부합하고 사회적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증세 방안이다. 그렇다면 지하경제를 과세권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탈세에 대한 전통적 대응 수단인 세무조사로는 한계가 있다. 개인납세자의 경우 전체 등록 사업자 중 세무조사 대상은 0.1~0.2%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고 세무조사 비율을 늘리는 것은 성실한 사업자들에 큰 부담이 된다.
이 분야에서 이룬 괄목할 만한 성과는 그간 주로 세금계산서 발급 확대와 신용카드 사용 증가,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등 과세인프라 강화를 통해 성취됐다. 이를 통해 가능해진 세원 양성화 효과도 적지 않지만 소비자의 협조에 의존하는 성격이 크다는 점에서 이제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과세에 포착되지 않는 이들의 거래는 주로 음성적인 현금수입이나 차명자산 보유, 불법소득, 역외탈세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수단이 필요하다. 이는 바로 금융거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다.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 수단으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과세당국의 금융정보 접근을 막는 가장 큰 장애는 금융비밀보장 규정이다. 1993년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과도한 비밀 보장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당시 혁명으로까지 비유되던 금융거래 실명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과세당국에 금융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절대적 금융비밀주의가 철폐되고 있는 국제적 추세에도 부합한다.
금융정보는 이미 다른 정부 부처에서 확보하고 있어 과세당국과 공유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FIU에 제출되는 고액현금거래보고(CTR), 혐의거래보고(STR) 등 자금세탁 관련 금융자료들이 그런 것이다. 외국의 국세청 중 이런 금융자료에 제한 없이 접근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효율적으로 활용할 경우 실질적으로 4조~6조원 정도의 세수 증가가 가능하다.
국세청의 FIU 금융자료 활용과 관련해서는 여러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무분별한 정보활용으로 인한 납세자의 권익 침해 등 국세청의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국세청은 담당자가 담당업무와 관련이 없는 납세자에 대해 정보를 조회하는 경우 전산 추적을 통해 내부 감사 대상으로 삼고 필요한 경우 징계하고 있어 납세자 권익이 침해당할 일은 낮다고 본다.
우려되는 것은 국세청이 정치적 요구에 의해 또는 정치권에 영합하기 위해 특정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는 금융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없는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 납세자 권익 침해를 우려해 금융자료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권을 제한하는 것은 탈세를 방조하는 효과를 야기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국세청의 FIU 금융자료 활용 폭이 넓어질 경우 오히려 지하경제가 더욱 음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지하경제의 거래가 금융권을 통하지 않고 현찰을 통한 거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인데 현찰거래 비용과 리스크가 너무 커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금융회사에 요구하는 자료도 고액현금거래에 국한된 것 아닌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거래를 일상적으로 현찰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는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현찰에 대한 수요가 대폭 확대돼 한국은행에서 바로 파악이 가능하다.
미국과 호주는 과세당국이 고액거래와 관련한 금융정보를 제한 없이 받을 수 있다. 캐나다와 대만의 경우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한국은 이스라엘, 태국 등과 같이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범죄자금 등 특정 혐의가 있는 사안에 대해 구체적 요구가 있는 경우에만 금융정보가 제공되는 것이다.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는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중요한 정보가 과세당국에 집중되는 것이 마뜩지 않을 수 있다. 국세청이 그러한 의혹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의 정치적 행태에 대한 통제와 국세청이 탈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반대 금융 사생활 지나치게 침해…세수효과 없이 거래만 위축
최근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복지재원으로 활용할 세수를 확대하기 위해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주장대로 FIU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해 지하경제를 축소할 수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FIU 금융거래정보를 갖게 되면 정말로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지금껏 나온 논거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FIU의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오해에 기반한 주장이거나 국민에게 FIU가 갖고 있는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들이 포함돼 있다.
첫째, 국세청의 주장은 마치 FIU 금융거래정보가 현재 국세청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비춰질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FIU 정보는 국세청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FIU는 자체적으로 판단해 조세범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금융거래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세청이 조세범칙사건 및 혐의 확인을 위해 요청하면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FIU가 심사분석해 국세청에 제공한 정보의 비중은 경찰, 검찰 등 전체 법집행기관에 제공하는 정보 가운데 절반 이상(56.6%)이다.
국세청에 이미 의심자료 제공…과도한 정보 집중은 역효과
둘째, 국세청의 주장은 FIU에 더 많은 조세 관련 범죄 자료가 있는데 국세청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2009~2011년 중 금융회사가 FIU에 보고한 금융거래정보 건수 70여만건 가운데 2.3% 정도가 범죄 가능성이 의심돼 국세청에 자료가 넘어갔다. 전체 규모에 비춰 보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세청 외에 검찰청 경찰청 등으로 넘어가는 범죄 정보를 포함하면 이 비중은 4%대로 늘어난다. 더구나 국세청은 제공받은 2.3% 금융거래정보 가운데 절반 정도만 조세 추징 등 관련 범죄로 적극적으로 처리할 뿐 나머지는 혐의 없음으로 판단하거나 판단을 보류한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FIU로부터 받지 않은 나머지 정보에 탈세와 관련된 거래가 다수 포함됐을 여지는 별로 크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셋째, 국세청은 이미 FIU에서 받고 있는 혐의거래보고(STR)보다 아직 제공받지 않고 있는 고액현금거래보고(CTR)가 범죄 관련 정보를 더 많이 담고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지금도 STR과 CTR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고액현금거래보고에는 일반 개인 및 중소기업 등의 지극히 정상적인 거래도 다수 포함된다. 특히 금융회사는 스스로 판단해 보고하는데, 범죄와 관련이 있음에도 없다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가급적 보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STR에는 사실은 범죄와 관련이 없는데도 신고된 정보가 당연히 포함된다.
넷째, FIU 금융거래정보는 세수 확대와 관련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짙다. FIU가 출범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탈세 등 조세범칙행위를 하게 되면 FIU에 보고된 뒤 국세청이 이를 받아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다. 바보가 아니라면 탈세 동기를 가진 사람이 고액현금거래가 FIU에 포착되는 방식으로 거래할 가능성은 낮다.
국세청의 주장대로 국세의 부과 및 징수를 위해 FIU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문제점이 야기될 것인가.
첫째, 설령 FIU 금융거래정보에 조세범죄 관련 정보가 있더라도 국세청의 직접 열람이 이뤄지면 조세범죄 관련 현금거래는 더 이상 은행계좌를 이용하는 현금거래방식은 하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오히려 지하경제는 더 확대될 수 있다. 기대했던 세수 확대 가능성도 당연히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FIU의 규제와 자율의 균형추 역할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게 두 번째 문제다. 즉 시장신뢰를 해치는 경제범죄는 방지하되 자유로운 금융거래를 위해 사적금융거래비밀을 보호한다는 FIU 원칙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원칙을 위해 FIU는 수사권과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FIU 정보를 국세청에 전면 허용하게 되면 이런 원칙은 사실상 무너진다. 국세청이 탈세혐의가 명백하지 않아도 금융정보를 이용해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FIU 설립 근거법인 특정금융거래정보보고법과 금융실명제법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법으로서의 효력을 잃게 될 수 있다.
셋째, 자금세탁방지제도는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협조에 기반하는데, 만일 FIU의 필터링 없이 모든 정보가 국세청에 제공된다면 사적금융비밀 보호 의무를 가진 금융회사의 협조를 현저히 저하시키고 자칫 중대범죄와의 관련성이 높은 금융거래정보마저 신고에서 누락시키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넷째, FIU 금융거래정보에는 범죄와 무관한 정상적인 금융거래정보가 많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모두 공개하게 됨으로써 본인의 요구나 동의 없이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사생활이 외부에 유출되는 자유권의 침해가 이뤄져 금융거래를 위축시키고 거래비용을 높여 소비자 이익을 훼손하는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 세수 확대 효과 불확실…지하경제만 되레 더 커져
세수 확대는 이뤄지지 않고 지하경제는 오히려 더 커지는 가운데 FIU는 더 이상 규제와 자율의 균형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소비자의 이익은 훼손될 수 있다. 국세청이 안게 되는 부담도 문제다. FIU의 심사분석능력을 언급하는 것은 현행 FIU 심사분석팀 다수가 국세청 파견직원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세청의 ‘자기부정’이 될 소지가 있다. 탈세혐의가 없더라도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국세청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언제든 국세청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모든 정보를 국세청이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FIU의 심사 역량을 강화하고 국세청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체제를 확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FIU에는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 내역과 1000만원 이상의 계좌 이체, 현금 거래 가운데 범죄와 자금세탁 등의 혐의가 의심되는 모든 거래 내역이 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보고된다. 이 중 국세청이 세무조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FIU 자료는 극소수다. 2011년 FIU에 보고된 1000만원 이상의 탈세혐의 거래 32만9463건 가운데 2.3%인 7468건만 국세청으로 통보됐다. 지난해 FIU에 통보된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만 무려 210조원에 이르지만 국세청은 이를 아예 볼 수도 없다.
국세청은 2009~2011년 3년 동안 FIU에서 통보받은 일부 자료만으로도 세무조사를 통해 4318억원을 거뒀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은 FIU에 보고된 모든 거래정보를 활용해 세무조사에 나서면 연간
최소 4조원, 최대 10조원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보,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FIU 정보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반면 FIU를 산하에 둔 금융위원회는 국세청의 과도한 정보 집중과 금융정보 비밀보장 훼손에 따른 사생활 침해, 다른 목적으로의 유용 가능성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FIU에도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했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도 소관 상임위원회에 따라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국세청이 소속된 기획재정위원회는 찬성을, 금융위가 소속된 정무위원회는 유보적이다. 차기 정부가 추진할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세입을 확대하고 경제 전반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에도 불구, 이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찬성 지하경제 양성화 최적 수단…4조~6조원 세수증가 가능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막대한 재정지출이 예상된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충당해 나갈 것인지가 차기 정부가 직면한 과제다.
정부의 지출 구조를 개선하고 조세 감면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대한 각종 연구와 지금까지 정부가 감면을 축소하기 위해 수행한 노력을 종합해 보면 이 분야에서 달성할 수 있는 세수 확보는 초라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국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채발행은 단기적 경기변동에 대한 대책이지 정부지출 구조의 장기적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사회복지지출 증가는 단기간의 지출 증가가 아니라 지출 구조의 장기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재원조달 방안으로서 국채발행은 적절하지 않다.
결국 국채발행이나 비과세 감면 축소보다는 지하경제 양성화에 힘쓰는 것이 사회정의에 더 부합하며 세수 확보의 가능성도 큰 방안이다. 반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서 가장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세율 인상은 세금 부담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납세자를 크게 구분해 소득을 성실하게 신고하는 성실집단과 대부분을 신고하지 않는 불성실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면, 세율 인상으로 추가적 부담을 떠안는 집단은 필시 성실집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세금을 탈세하고 있는 납세자가 세율이 올랐다고 더욱 성실하게 신고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고액의 현금거래 정보 일반 납세자와 관련 적어
세율 인상에 앞서 지하경제를 과세권으로 편입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최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조세정의에 부합하고 사회적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증세 방안이다. 그렇다면 지하경제를 과세권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탈세에 대한 전통적 대응 수단인 세무조사로는 한계가 있다. 개인납세자의 경우 전체 등록 사업자 중 세무조사 대상은 0.1~0.2%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고 세무조사 비율을 늘리는 것은 성실한 사업자들에 큰 부담이 된다.
이 분야에서 이룬 괄목할 만한 성과는 그간 주로 세금계산서 발급 확대와 신용카드 사용 증가,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등 과세인프라 강화를 통해 성취됐다. 이를 통해 가능해진 세원 양성화 효과도 적지 않지만 소비자의 협조에 의존하는 성격이 크다는 점에서 이제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과세에 포착되지 않는 이들의 거래는 주로 음성적인 현금수입이나 차명자산 보유, 불법소득, 역외탈세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수단이 필요하다. 이는 바로 금융거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다.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 수단으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과세당국의 금융정보 접근을 막는 가장 큰 장애는 금융비밀보장 규정이다. 1993년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과도한 비밀 보장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당시 혁명으로까지 비유되던 금융거래 실명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과세당국에 금융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절대적 금융비밀주의가 철폐되고 있는 국제적 추세에도 부합한다.
금융정보는 이미 다른 정부 부처에서 확보하고 있어 과세당국과 공유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FIU에 제출되는 고액현금거래보고(CTR), 혐의거래보고(STR) 등 자금세탁 관련 금융자료들이 그런 것이다. 외국의 국세청 중 이런 금융자료에 제한 없이 접근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효율적으로 활용할 경우 실질적으로 4조~6조원 정도의 세수 증가가 가능하다.
국세청의 FIU 금융자료 활용과 관련해서는 여러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특히 무분별한 정보활용으로 인한 납세자의 권익 침해 등 국세청의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지적되고 있다. 국세청은 담당자가 담당업무와 관련이 없는 납세자에 대해 정보를 조회하는 경우 전산 추적을 통해 내부 감사 대상으로 삼고 필요한 경우 징계하고 있어 납세자 권익이 침해당할 일은 낮다고 본다.
우려되는 것은 국세청이 정치적 요구에 의해 또는 정치권에 영합하기 위해 특정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는 금융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없는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 납세자 권익 침해를 우려해 금융자료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권을 제한하는 것은 탈세를 방조하는 효과를 야기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국세청의 FIU 금융자료 활용 폭이 넓어질 경우 오히려 지하경제가 더욱 음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지하경제의 거래가 금융권을 통하지 않고 현찰을 통한 거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인데 현찰거래 비용과 리스크가 너무 커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금융회사에 요구하는 자료도 고액현금거래에 국한된 것 아닌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거래를 일상적으로 현찰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는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현찰에 대한 수요가 대폭 확대돼 한국은행에서 바로 파악이 가능하다.
미국과 호주는 과세당국이 고액거래와 관련한 금융정보를 제한 없이 받을 수 있다. 캐나다와 대만의 경우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한국은 이스라엘, 태국 등과 같이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범죄자금 등 특정 혐의가 있는 사안에 대해 구체적 요구가 있는 경우에만 금융정보가 제공되는 것이다.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는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중요한 정보가 과세당국에 집중되는 것이 마뜩지 않을 수 있다. 국세청이 그러한 의혹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의 정치적 행태에 대한 통제와 국세청이 탈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반대 금융 사생활 지나치게 침해…세수효과 없이 거래만 위축
최근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복지재원으로 활용할 세수를 확대하기 위해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주장대로 FIU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해 지하경제를 축소할 수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FIU 금융거래정보를 갖게 되면 정말로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지금껏 나온 논거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FIU의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오해에 기반한 주장이거나 국민에게 FIU가 갖고 있는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장들이 포함돼 있다.
첫째, 국세청의 주장은 마치 FIU 금융거래정보가 현재 국세청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비춰질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FIU 정보는 국세청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FIU는 자체적으로 판단해 조세범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금융거래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세청이 조세범칙사건 및 혐의 확인을 위해 요청하면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FIU가 심사분석해 국세청에 제공한 정보의 비중은 경찰, 검찰 등 전체 법집행기관에 제공하는 정보 가운데 절반 이상(56.6%)이다.
국세청에 이미 의심자료 제공…과도한 정보 집중은 역효과
둘째, 국세청의 주장은 FIU에 더 많은 조세 관련 범죄 자료가 있는데 국세청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2009~2011년 중 금융회사가 FIU에 보고한 금융거래정보 건수 70여만건 가운데 2.3% 정도가 범죄 가능성이 의심돼 국세청에 자료가 넘어갔다. 전체 규모에 비춰 보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세청 외에 검찰청 경찰청 등으로 넘어가는 범죄 정보를 포함하면 이 비중은 4%대로 늘어난다. 더구나 국세청은 제공받은 2.3% 금융거래정보 가운데 절반 정도만 조세 추징 등 관련 범죄로 적극적으로 처리할 뿐 나머지는 혐의 없음으로 판단하거나 판단을 보류한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FIU로부터 받지 않은 나머지 정보에 탈세와 관련된 거래가 다수 포함됐을 여지는 별로 크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셋째, 국세청은 이미 FIU에서 받고 있는 혐의거래보고(STR)보다 아직 제공받지 않고 있는 고액현금거래보고(CTR)가 범죄 관련 정보를 더 많이 담고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 지금도 STR과 CTR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고액현금거래보고에는 일반 개인 및 중소기업 등의 지극히 정상적인 거래도 다수 포함된다. 특히 금융회사는 스스로 판단해 보고하는데, 범죄와 관련이 있음에도 없다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가급적 보고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STR에는 사실은 범죄와 관련이 없는데도 신고된 정보가 당연히 포함된다.
넷째, FIU 금융거래정보는 세수 확대와 관련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이 짙다. FIU가 출범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탈세 등 조세범칙행위를 하게 되면 FIU에 보고된 뒤 국세청이 이를 받아 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다. 바보가 아니라면 탈세 동기를 가진 사람이 고액현금거래가 FIU에 포착되는 방식으로 거래할 가능성은 낮다.
국세청의 주장대로 국세의 부과 및 징수를 위해 FIU 금융거래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문제점이 야기될 것인가.
첫째, 설령 FIU 금융거래정보에 조세범죄 관련 정보가 있더라도 국세청의 직접 열람이 이뤄지면 조세범죄 관련 현금거래는 더 이상 은행계좌를 이용하는 현금거래방식은 하지 않게 되고 이에 따라 오히려 지하경제는 더 확대될 수 있다. 기대했던 세수 확대 가능성도 당연히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FIU의 규제와 자율의 균형추 역할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게 두 번째 문제다. 즉 시장신뢰를 해치는 경제범죄는 방지하되 자유로운 금융거래를 위해 사적금융거래비밀을 보호한다는 FIU 원칙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원칙을 위해 FIU는 수사권과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FIU 정보를 국세청에 전면 허용하게 되면 이런 원칙은 사실상 무너진다. 국세청이 탈세혐의가 명백하지 않아도 금융정보를 이용해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FIU 설립 근거법인 특정금융거래정보보고법과 금융실명제법은 더 이상 의미 있는 법으로서의 효력을 잃게 될 수 있다.
셋째, 자금세탁방지제도는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협조에 기반하는데, 만일 FIU의 필터링 없이 모든 정보가 국세청에 제공된다면 사적금융비밀 보호 의무를 가진 금융회사의 협조를 현저히 저하시키고 자칫 중대범죄와의 관련성이 높은 금융거래정보마저 신고에서 누락시키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넷째, FIU 금융거래정보에는 범죄와 무관한 정상적인 금융거래정보가 많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모두 공개하게 됨으로써 본인의 요구나 동의 없이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사생활이 외부에 유출되는 자유권의 침해가 이뤄져 금융거래를 위축시키고 거래비용을 높여 소비자 이익을 훼손하는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 세수 확대 효과 불확실…지하경제만 되레 더 커져
세수 확대는 이뤄지지 않고 지하경제는 오히려 더 커지는 가운데 FIU는 더 이상 규제와 자율의 균형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금융소비자의 이익은 훼손될 수 있다. 국세청이 안게 되는 부담도 문제다. FIU의 심사분석능력을 언급하는 것은 현행 FIU 심사분석팀 다수가 국세청 파견직원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세청의 ‘자기부정’이 될 소지가 있다. 탈세혐의가 없더라도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국세청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언제든 국세청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모든 정보를 국세청이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FIU의 심사 역량을 강화하고 국세청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체제를 확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