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루병 앓던 故 손상기 화백 조명…예술로 승화시킨 삶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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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의 삶과 예술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은 고독한 불구의 프랑스 화가였다. 어린 시절 추락사고 이후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신체장애를 안고도 몽마르트 주변의 창녀, 부랑배 등의 애환을 화폭에 담았다. 한국에도 이런 화가가 있었다. 세 살 때부터 구루병으로 인한 척추만곡의 장애를 딛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펼쳐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렸던 손상기 화백(1949~1988)이다.
김진엽 외 지음 / 사문난적 / 224쪽 / 1만5000원
평생 병마와 싸우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며 어느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손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 손상기기념사업회와 그의 고향인 전남 여수시, 유언에 따라 그의 작품을 관리하는 샘터화랑이 고인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책 《손상기의 삶과 예술》을 출간했다. 변종필 서영희 서성록 장준석 김진엽 등 평론가 4명이 쓴 이 책에는 유족 인터뷰를 통해 손 화백의 삶과 회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기, 그의 회화에 대한 학술적 분석, 서울에서 활동한 시기의 작품 세계, 손 화백의 주된 장르였던 인물화와 정물화에 대한 분석 등이 담겼다.
고인의 삶은 불행했다. 신체적 장애와 더불어 가난과 두 차례나 이혼했던 불행한 가정생활 등이 겹쳤다. 그러나 불행은 그에게 오히려 불굴의 예술혼을 싹트게 했고 마침내 그를 한국 화단의 별로 자리잡게 했다. 그의 천재성은 원광대 미술학부 시절인 1977년 전북미술전람회 특선, 한국창작미술협회 공모전 입선 등의 결과로 나타났고 한국미술대전 등에 입선하면서 주목받았다. 시와 산문을 즐겨 쓰며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책 서문에서 “우리가 새삼 손상기 화백의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평범한 구상화가나 민중 계열의 화가도 아니면서 독특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에 있다”며 “손상기는 아픈 영혼의 몸짓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인간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작가는 사람들의 심부 깊숙한 곳에 드리운 그늘진 부분들을 잘도 캐내어 감상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