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드골이 생각난다

청렴 강직한 드골…정치 안정 이뤄
시대 앞선 투자와 탁월한 외교력…앞을 보는 혜안도 돋보인 지도자

박종구 <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pjk@kopo.ac.kr >
‘레 미제라블’ 열풍을 계기로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격변의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전후의 혼란을 딛고 일어나 유럽의 중심국가로 우뚝 선 프랑스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드골이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리더십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드골은 두 번 조국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다. 1940년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은 그 유명한 6·18연설을 통해 나치 독일에 대한 계속 항전을 촉구했다. 1944년 8월 수도 파리를 수복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프랑스의 주권을 회복시켰다. 1958년 5월 알제리 내전으로 제4공화정이 붕괴하자 드골은 “이 나라를 구원으로 이끌 의무가 본인에게 맡겨졌다”고 선언한다. 그는 알제리 내전을 진정시키고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을 출범시킴으로써 다시 한 번 조국을 살려냈다.무엇보다도 드골의 위대함은 프랑스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1946~1958년 내각책임제 하에서 내각의 평균수명은 6.5개월에 불과했고 21명의 총리가 바뀌었다. 드골은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함으로써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프랑스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자율과 질서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확립했다. 1958~2012년 기간 중 프랑스 대통령의 평균 재임기간은 10.8년으로 정치적 안정이 확보됐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남겨 준 가장 큰 유산이 나폴레옹 법전이라면 드골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제5공화국 헌법인 셈이다.

드골은 뛰어난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 장 모네와 지스카르 데스탱 같은 경제 전문가를 중용하고, 고속철 테제베, 미라지 전투기, 핵 개발, 원전 건설 등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학기술 진흥에 노력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우주, 항공,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도 드골의 시대를 앞선 투자 덕분이다.

드골은 매우 청렴한 지도자였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했고 늘 국가에의 봉사를 최우선시했다. 엘리제궁 집 전기료와 전화비를 지불하고 자녀와 친척들에게 일체의 특권을 허용치 않았다. 드골 임종 시 아들 필립이 향리 콜롱베로 귀향할 때조차도 사사로이 관용차량을 이용할 수 없었다. 72달러짜리 값싼 나무관에 입관되어 자기 딸 안느 옆에 안장됐다. 드골은 근접하기 어렵고 냉정한 지도자로 평가되곤 했다. ‘어릴 적에 냉장고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격이 차갑다고 군 동료들이 비꼬고는 했다. 그러나 다운증후군에 걸린 막내 딸 안느에 대한 헌신, 아들 필립에 대한 엄하지만 자애로운 부성애, 콜롱베 주민들에게 보여준 애정은 드골이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잘 보여준다.드골은 탁월한 외교가였다. 2차 대전 중 대독 항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처칠과의 긴밀한 동맹을 통해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견제 속에서도 프랑스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끌어올렸다. 보수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제리 독립과 사하라 이남 프랑스령 국가의 탈식민지화를 용인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세력균형에 노력한 점, 1964년 베이징 정부를 승인한 점 등은 드골의 외교적 탁견이 아닐 수 없다. 특히 1963년 엘리제 불독협력조약을 체결,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유럽의 평화와 세력균형을 도모했다. 1960년 미국 대선,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패배한 닉슨의 정치적 재기를 확신하고 야인시절에도 변함없이 후대한 점은 드골의 뛰어난 예견력을 잘 보여준다.

그도 인간이기에 여러 가지 실정을 기록했다.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화된 점, 농업부문 등이 과보호된 점, 고등교육 개혁을 소홀히 해 1968년 학원 소요가 초래된 점, 말년에 노쇠해 자신의 성공신화에 갇혀 버린 점 등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러나 드골은 ‘프랑스가 위대하지 않다면 프랑스일 수 없다’는 ‘프랑스의 상징’이다. 소설가 앙들레 말로의 말처럼 ‘과거의 인물인 동시에 내일 모레의 인물’이다. 2005년 프랑스 공영 2TV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평가됐다. 누구도 드골이 있었기에 오늘의 프랑스가 건재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종구 <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pjk@kopo.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