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 나를 깨우자] 내시·토빈·크루그먼…그들의 삶이 곧 경제학의 역사

세상을 바꾼 경제학
야자와사이언스 연구소 지음 / 신은주 옮김 / 김영사 / 304쪽 / 1만3000원

영화 '뷰티풀 마인드' 모델 내시…외환·금융위기 예측 크루그먼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 센 등…노벨 경제학상 수상 11인 조명
1901년부터 작년까지 노벨상 수상자는 800여명. 이 가운데 영화나 스포츠 스타에 견줄 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은 많지 않다. 굳이 꼽자면 자연과학계의 우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그런 사람이다. 또 한 사람 더 있다.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내시(85)다.

내시가 유명해진 건 노벨경제학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년) 덕분이다. 내시의 굴곡진 인생을 그린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돼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내시는 빛나는 두뇌와 광기의 소유자였다. 카네기공대에서 수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프린스턴대에서 연구한 그는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에 큰 관심을 보였고, 1950년 비협력 게임에서 내시균형을 발견했다. 이듬해 수학연보에 그의 논문이 실렸을 땐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훗날 경제학과 정치학에 널리 응용되면서 노벨상을 받게 됐다.

내시균형을 발견한 지 44년이 지나서야 노벨상을 받은 건 그가 서른 살부터 정신질환을 앓았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수학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1980년에야 정신병에서 회복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그의 게임이론은 현대 경제학의 기초를 쌓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꾼 경제학》은 내시를 비롯한 11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이야기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79),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후생경제학을 연구한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80·인도),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포트폴리오 이론을 주장한 제임스 토빈(1918~2002),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폴 크루그먼(60) 등의 연구 현장과 업적,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그들의 날카로운 통찰과 지적 호기심 등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198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은 ‘금융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인스 경제학의 계승자다. 포트폴리오 이론이나 투기자본 억제를 위한 토빈세 등 그가 남긴 경제학적 유산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손’에도 ‘손’이 필요하다던 토빈은 현대사회의 문제점인 에너지 및 환경, 인구증가, 과격한 개인주의 대두, 수입의 불평등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이라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998년 수상자인 아르마티아 센은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인물. 그는 국가경제의 성장과 불황을 다루는 주류 경제학이 아니라 빈곤이나 기아, 불공정한 분배 같은 사회적 불평등에 주목한 후생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서양경제학이 지배하는 경제학계에서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야자와사이언스연구소의 저자 4명은 스웨덴 왕립아카데미가 이전 경제학상 수상자들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센을 뽑았는지도 모른다고 일침을 가한다. 노벨상선정위원회는 1990년대 경제학의 주역들이 행동지침으로 내건 자유방임주의를 그대로 따랐고, 1997년 러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즈가 금융옵션 및 금융파생상품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금융파생상품의 리스크를 평가하는 수리모델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거대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공동 설립자였다. 하지만 LTCM은 1998년 파산했고, 세계경제를 대혼란에 빠지게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그해 노벨경제학상이 센에게 돌아갔다는 얘기다.책머리에 실린 ‘노벨상의 배경과 역사’에서도 저자들은 노벨경제학상의 한계를 지적한다. 1969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제학상 수상자 71명 대부분이 미국인과 영국인이고, 서양인이 아닌 수상자는 인도의 센뿐이다. 특정학파의 경제학자들이 대거 수상한다는 점,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상이 돌아갔다는 점 등도 논란거리다. 저자들이 특정 경제학파와 학자에 치우치지 않도록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