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피해자 '집단소송제' 도입…재판 참여 안해도 배상금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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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 로드맵 - 경제민주화
기존 순환출자 증액 신규로 간주해 '금지'
'경제민주화' 용어는 명시적으로 사용안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증권 분야로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현재 기술 탈취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부당 단가 인하 등으로 확대하고 대기업 총수 일가가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얻은 부당이득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해 환수하기로 했다.
인수위는 21일 발표한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서 앞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담합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는 사업자가 대리점 등에 일정 가격 이하로 제품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집단소송의 효력 범위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제외 신청을 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에 효력이 미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리면 집단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장(경제1분과 전문위원)은 “담합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두 가지는 개별 소비자의 피해액은 적지만 다수가 피해를 볼 수 있는 대표적 불공정행위”라고 말했다.
인수위는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대해서만 피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하게 돼 있다. 이를 부당 단가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에 우선 도입하고 점차 도입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상한액을 10배로 하느냐, 3배로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외국 사례 등을 고려해 3배로 결정했다. 개인이나 기업이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직접 법원에 금지 명령을 청구하는 ‘사인(私人)의 금지청구제’도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개인이나 기업은 불공정행위에 대해 오직 공정위를 통해서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독점하는 전속고발권은 폐지된다. 중소기업청 감사원 조달청 등 3개 기관에 고발권을 분산해 이들 기관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의무 고발토록 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우선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이익을 본 총수 일가에 직접 과징금을 부과해 부당이득을 환수하기로 했다. 현재는 총수 일가를 지원한 기업에만 제재를 할 수 있어 제재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거래 중간에 끼어 수수료만 챙기는 통행세도 부당 지원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로 했다. 지배주주의 횡령 등에 대한 형사 처벌도 강화된다.
인수위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해서는 검찰 구형보다 낮은 판결이 나올 경우 검찰이 원칙적으로 항소하도록 할 방침이다.이 밖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가맹점에 대한 매장 리뉴얼(재단장) 강요를 금지하고 불가피하게 리뉴얼할 때는 가맹본부가 비용의 최대 40%를 분담하도록 했다. 대기업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기로 했다. 특히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기 위한 추가 출자도 신규 순환출자로 간주해 금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한편 인수위는 이번 국정과제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대부분 반영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국정과제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경제민주화의 후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강석훈 새누리당 국회의원(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은 이에 대해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라는 말이 경제민주화보다 폭넓게 적용될 분야가 많다고 판단했다”며 “경제민주화 폐기라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