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징역 1000년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국가나 집단의 공적 처벌은 예로부터 극형일수록 신체에 직접적 고통을 가하는 형태였다. 중국에선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 코를 베는 의형 등이 존재했다. 서양에서도 손발을 자르거나,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고문형 등이 횡행했다. 화형이나 능지처참 처럼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빼앗는 사형은 그 중에서도 동서양 공히 으뜸이었다.

사형을 비롯한 신체형이 논란이 된 것은 18세기부터다.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가 1764년 ‘범죄와 형벌’이란 책을 통해 ‘법이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다’고 주장한 것이 시발이었다. 그 결과 1786년 이탈리아 토스카나공국에서 처음으로 사형제가 폐지되기도 했다. 물론 “정의 실현을 위해 사형은 필연”이라고 말한 칸트처럼 사형 옹호론자의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논쟁은 이어진다. 2012년 현재 96개국에서 사형을 폐지했다. 한국을 비롯한 35개국은 10년간 한 명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불린다. 하지만 중국 등 60여개 나라는 여전히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제도와 달리 신체형은 18세기부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싱가포르 등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하면 징역형이 보편적 형벌로 자리잡았다. 응징이나 복수가 아닌 교화로서의 처벌이란 개념이 생겼고, 근대적 의미의 감옥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진일보한 형벌인 징역형은 유럽에서 자유형(freiheitsstraf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징역형은 때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기대수명을 훨씬 넘겨 아예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초장기 징역형도 나타난다. 2008년 미국 나스닥 이사장을 지낸 경력을 내세워 금융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신이 준 생명을 인간이 빼앗을 수 없다는 사형 폐지론의 근거를 충족시키면서도 범죄자를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 법원은 지난주 아동 포르노 2만6000건을 내려받은 TV33의 전 사장 피터 멀로이(64)에게 무려 1000년형을 선고했다. 여러 범죄의 형량을 더하는 누적주의에 따른 결과다. 검사는 다운로드를 한 50건에 대해서만 기소했는데, 법원은 한 건당 20년을 선고한 것이다. 종신형과 달리 징역형은 가석방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징역 1000년이란 언도기간을 감안할 때 가석방보다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크다. 감옥에서 죽으면 원칙적으로 시신은 가족에게 인도된다. 그러나 형기가 끝날 때까지 법률적으로는 영어의 몸이다. 영혼마저 갇히는 셈이니 어찌보면 사형보다도 더 심한 형벌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