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대학생 취업 디딤돌] 馬力에 끌려…"영어 교사·스포츠 강사도 그만뒀죠"

한국마사회 신입사원 임혜영·안재성 씨
지난달 14일. 마사회 신입사원 28명은 부푼 가슴을 안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임용식을 끝내자마자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제주경마공원을 찾은 것이다. 이유가 뭘까? 말의 고장인 제주도에서 연수의 첫 시작을 통해 초심을 다지자는 것이었다. 제주도 목장에서의 연수를 끝내고 다시 과천경마장으로 돌아온 신입사원들을 지난달 20일 만났다.

162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입사원이 된 안재성 씨와 임혜영 씨는 행정직군으로 입사했지만 마사회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스포츠건강학을 공부한 안씨는 캐나다 연수 기간 중 스포츠 매디슨 클리닉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나온 임씨는 중등임용시험 합격 뒤 3년간 중학교 영어선생님을 했다. 마사회라는 직장이 얼마나 좋길래, 번듯하고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을까 궁금했다. 두 신입사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취업 준비를 하며 많이 방황하고 고민해본 터라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며 오히려 기자를 재촉했다. ◆행정학 필기서 두 번의 실패

입사를 위한 첫 관문인 ‘서류전형’은 어떻게 통과했을까. 마사회는 서류평가 기준으로 학점·토익점수·자기소개서에 5 대 3 대 2의 가중치를 적용한다. 올해 신입사원의 평균 토익 점수는 911.7점, 학점은 3.7점(4.5점 만점)이었다. 학점이 낮다면 마사회를 비롯한 공공기관 청년인턴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서류 전형에서 10% 가산점을 주기 때문이다.

안씨 역시 2011년 4월부터 9개월간 마사회 청년인턴을 한 경험이 있다. “말등록원 부서에서 전국 출장을 다니며 숱한 마주와 목장 관계자들을 만났어요. 단 한 마리의 말이라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과 농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몸으로 느끼면서 마사회에서 꼭 일하겠다고 결심했죠.” 하지만 신입사원이 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취업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2년간 캐나다에서 일한 덕분에 940점대의 토익점수는 갖췄지만 행정학 필기시험이 문제였다. “필기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공무원 학원에서 두 달간 행정학 단과 수업을 들으며 준비했어요. 결국에는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고 매진했죠.”

한편 임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른 토익 시험에서 950점을 받았고, 영어교육학과에 진학했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출중했다. 3년간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하며 학생들과 부대끼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수업 외의 업무로 힘이 들 때면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늘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새롭게 시작하려니 막막하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범대생들은 교사 임용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요.” 교사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교직을 강력하게 권했던 부모님이 오히려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임씨는 두터운 행정학 책을 펼쳐 놓고 주경야독 생활을 시작했다.◆신문 3개월 꾸준히 봤더니 합격

스킨스쿠버 자격증, 스키 강사 경력 5년과 수영 강사 경력 등 운동을 사랑한 청년 안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고민에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보다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운동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겁더라고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일수록 여가 생활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컸죠.”

때마침 교육비 60%를 지원해주고 현지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연수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캐나다 토론토의 한 스포츠 클리닉에서 근무하며 ‘올해의 직원상’을 2년 연속 수상했어요.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까지 도맡아하며 ‘워커홀릭’ ‘크레이지 아시안’이라는 애칭까지 얻었죠. 낯선 땅에서 인정받기까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죠.” 안씨는 이때 얻은 자신감이 마사회 합격의 열쇠였다고 말했다.마사회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던 지난 1월10일. 임씨는 취업 스터디를 구해 곧바로 면접 준비에 들어갔다. 마사회를 위해 모인 8명은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사무직 1차 면접은 그룹 토론, 개인 프레젠테이션, 영어 면접으로 진행되며, 기술직은 영어 대신 전공 면접을 본다. “회사 연혁 등 기초적인 정보부터 2년치 기사 검색으로 말 산업을 분석해 보는 등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임원진 면접 때는 예상 질문 100개를 만들어 실제 면접장처럼 연습을 했죠.” 실제 면접장에서는 PT 주제로 예상하지 못했던 ‘말 향장품(말기름이나 말가죽 등으로 만든 화장품 비누 등)인지 향상 방안에 대해 논하라’가 주어져 당황했지만, 말 산업을 공부해 둔 덕에 벙어리는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며 3개월간 한국경제신문을 꾸준히 보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었다. 최종면접장에서 “택시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간 쌓아온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안씨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상식 퀴즈를 꾸준히 풀었던 것과 TBS교통방송의 영어 전용 라디오 ‘eFM’에서 토론 방송을 들었던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오랜 시간 다른 길을 걷다 마사회를 택한 이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살려 마사회의 사회공헌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뜻 깊은 사업들이 많은데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웠거든요.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사무실의 귀염둥이도 되고 싶어요.” 웃으며 말하는 임씨를 보던 안씨도 “말이 생각보다 애교가 많아요. 사람에게 다가와서 냄새를 맡기도 하고, 비비적거리는데 무척 귀여워요. 승마를 통해 말이 먼 존재가 아닌, 친구 같은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랍니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KRA 한국마사회(Korea Racing Authority·회장 장태평)는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설립된 이래 국내 유일의 경마시행 업체로 경마의 공정한 시행과 원활한 보급을 통해 말 산업 및 축산 발전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여가선용을 도모하고자 세워진 준시장형 공기업이다.

경마시행 외에도 경주마 등록, 경주마 생산과 육성 지원, 승마와 말 문화 보급과 같은 말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정부와 함께 농어촌 복지와 축산업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총 5개 본부 3개 경마장에서 임직원 789명을 포함해 모두 75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매년 경마를 통해 얻는 1조원이 넘는 수익금을 세금 납부와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과 같은 사회 소외계층을 돕는 데 쓰고 있다.

공태윤/노윤경 한경잡앤스토리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