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성호 이익 "나는 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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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대작들이 잘못하면 백성들은 들판에서 죽어…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이유‘간뇌도지(肝腦塗地)’는 참혹한 말이다. 죽임을 당해 간과 뇌가 으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는 뜻이다. 성호 이익(1681~1763)이 지은 정책제안서 ‘곽우록’ 서문에는 “정치인이 잘못하면 서민은 간뇌도지한다”는 말이 나온다. 곽우록이란 말은 콩잎 반찬을 먹는 사람의 근심을 기록했다는 말이다. 콩잎 반찬이란 고기 반찬에 대응하는 말로서 신분이 낮은 백성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천한 백성이 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당위를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익은 곽우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천한 사람이다. 천한 사람의 근심은 백묘(농사지어 먹고 사는 것)의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이란 쉼이 없어 혹 신분을 벗어나 참람한 생각도 하니 이는 필부의 죄다.”이익은 자신을 천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농사를 짓는 백성이란 것이다. 백성이 신분을 잊고 감히 나라님이나 고관대작이 하는 국가의 대계를 논하는 것은 건방진 일이니 이는 곧 필부의 죄라고 말한다.
“옛날에 동곽조조가 진헌공에게 글을 올려 국가의 정책에 대해 물으며 ‘육식자가 하루아침 조정에서 잘못하면 곽식자는 중원의 들판에서 간과 뇌가 으깨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도 또한 깊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만약 마부가 고삐를 놓치면 참승(주군의 수행원)이 나서서 화를 면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익은 백성이 천한 신분임에도 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육식자란 고기 반찬을 먹는 사람, 곽식자란 콩잎 반찬을 먹는 사람. 고관대작과 일반 서민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곽식자 동곽조조는 육식자 진헌공에게 “고관대작이 잘못하면 들판에서 참혹하게 죽는 것은 우리”라며 “그러니 목숨이 달린 일에 어떻게 간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지금 우리나라가 편안하고 국가의 대계는 치밀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촉 땅의 개는 눈을 보고 짓고 구멍 속에 개미는 홍수에도 태연하니 본디 사물이란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는 법이다. 병으로 신음하는 여가에 대략 책으로 엮어 놓았다. 여기저기서 가져다가 베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잘못이다.”
이제 이익은 필부로서 현금의 상황을 본다. 병자호란 이후로 큰 전쟁이 없었고, 또 국가의 정책도 매우 치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겉모습일 뿐 속 내용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필부란 원래 식견이 좁은 자다. 평생 눈을 보지 못한 촉 땅의 개가 눈이 오면 짓듯, 구멍 속에 살아서 큰 물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개미가 자신이 떠내려갈 판인데도 편하게 누워있듯 말이다. 서민의 의견이 치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들의 의견을 무시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익은 말한다. 나 역시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책을 만들었다고.
이익이 살던 시기는 당쟁의 시대였다. 청나라의 안정은 조선을 외침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당쟁으로 인한 정책의 빈곤은 민생을 도탄으로 내몰았다. 곽우록이란 정책제안서를 지은 것도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지난해는 대선이 치러진 해였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접한 말 가운데 하나가 ‘국민의 눈높이’란 단어다. 이 말의 숨은 뒷면은 국민과 다른 정체성의 존재다. 정치인은 국민과 괴리된 눈높이를 가진 집단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익은 말한다. “나는 천인이다”라고. 단순하고 명확하다. 천인이 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이유를 이념도 아니고 생활도 아닌 ‘생존’으로 규정한다.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 극을 향해 치닫는 이 둘을 감당해내는 것은 결코 정치인도 지식인도 아니다. 오직 기층민인 서민일 뿐이다. 기층민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눈높이나 맞추어 보겠다는, 혹은 맞추어 보라는 정치인과 지식인의 자세로서는 전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없다는 것이 250년 전에 살았던 이익이 자신을 천인으로 규정한 까닭일 것이다. 이런 정체성의 확인이 이 시대의 정치인이나 지식인에게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역사는 발전하는 것일까.
서정문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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