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시계는 멈추었다…목숨 건 한국 외교관의 동일본대지진 100일간 체험기 나와

일본에 애정을 가진 ‘지일파’ 외교관이 체험한 일본 대지진 체험기
동일본대지진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3월16일(수) 대지진 발생 6일째. 여전히 총영사관은 불야성이다.
벌써 밤 11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공관에서는 대지진에 따른 안부 확인 전화와 여권발급으로 민원창구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무실의 모든 방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오늘 밤도 무사히 넘기고 내일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겠지하면서 냉기가 있는 사무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제발 후쿠시마원전이 현 상태에서 잘 수습되길 기원할 뿐이다. 신의 가호를 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원전 사고로 위기가 가장 고조됐던 16일 밤 주일 센다이 총영사관에 근무했던 한국 외교관 일기의 한 토막이다. 최악의 경우 원전 폭발 상황까지 갈 수 있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긴박한 위기 속에서 피해 현장을 지킨 외교 책임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맞아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당시 피해와 복구에 대한 조명 활동이 활발하다. 동일본 대지진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작업이 활발한 가운데 지진 발생 첫날부터 100일 간의 숨가빴던 상황일지를 담은 귀중한 기록물이 단행본으로 나왔다.화제의 책은 <그날 시계는 멈추었다(이룸나무)>. 3·11 대지진 당시 주일본 센다이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외교관이 처참한 재해현장을 기록한 내용. 필자인 현석 씨는 일본 동북지역에서 발생한 쓰나미와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를 체험한 글을 통해 한국 정부와 국민들도 자연재해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전남 광주 출생인 필자는 50여년을 살면서 두 번의 큰 재해를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첫 번째는 대학 2학년 때 겪은 1980년
‘5·18 광주사태’. 그 사건은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신군부가 만들어 낸 재난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가정에서 체득했던 선과 악의 가치관을 흔들어버렸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필자는 설명한다.

두 번째는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인 자연재해였다. 시회의 중추 역할을 맡은 나이에 경험한 대지진은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일깨워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여러차례 일본에 근무한 ‘일본통’ 외교관인 필자는 동일본대지진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강조한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에 대응해 피해를 줄이는 긴급 대처 방안을 생생하게 담아 공무원은 물론 재난 업무에 종사하는 민간 기업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지지 이후 변화하는 일본 사회를 리얼하게 전해 향후 대일 관계에도 참고할 만하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의 참상을 겪은 소감을 담았다. 지진 발생 당일 신칸센을 탄 채 추위와 배고픔으로 보낸 22시간의 기록과 함께 지진 발생 후 초기 100일간의 진행 상황을 현장 지휘 책임자 입장에서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2부는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의 3중 복합 재해를 분석했다. 지진 피해 지역에 위치한 재외공관과 재일민단의 대처 노력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대지진이 일본 사회와 경제에 미친 파급 영향과 일본 지자체들의 재해극복 실태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필자는 “한국에서도 1100여년 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동일본대지진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대응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자연재해에 맞선 주일 외교관들과 재일교포의 처절한 생존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일본에 애정을 가진 외교 전문가의 3·11 대지진 체험기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한경닷컴 최인한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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