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입각 못했어도 섭섭하지 않아…朴 대통령, 쓴소리도 들어야 성공"

박근혜 싱크탱크서 '독립선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대통령은 공조직 활용해야…사조직인 우리가 결별 선택한 것
창조경제 지나치게 강조하면 경제위기 관리 소홀히 할 수도
건설·부동산 살리는 게 가장 시급

지난 3일 오전 서강대 마테오관 9층 리셉션룸.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의 인터넷 홈페이지(www.ifs.or.kr) 론칭 행사에 회원 학자 90여명(전체 회원은 200여명)이 모였다. 그들 앞에 선 김광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의 회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통령과 상호 독립적인 관계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어떤 정권이나 어떤 정당에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싱크탱크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2010년 12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발기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해 출범한 국가미래연구원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독립 선언’을 한 것이다. 한때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던 김 원장은 그동안 조심스러워하던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며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말하고 있다. 김 원장을 7일 서울 마포동 마포현대빌딩 2층에 있는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만났다. 그는 박 대통령과의 인연, 그의 장단점, ‘불통 논란’ 등 까다로운 질문에도 솔직 담백한 대답을 쏟아냈다.▷박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독립한 이유가 있나요.

“대통령을 도와주는 공조직은 정부 출연연구소 등 많습니다. 대통령은 공조직을 활용해야지, 우리 같은 사조직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대통령을 위해 우리가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기왕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어렵게 모였는데, 독립적인 싱크탱크를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했죠.”

▷독립했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앞으로 우리가 내놓는 정책보고서를 보면 알 것입니다. 행복지수, 민생지수, 안전지수 등을 개발해 주기적으로 발표할 건데, 박근혜 정부 임기 중 지수가 나빠지더라도 계속 공개할 거예요. 이런 독립성을 위해 연구원도 소액 다수의 후원금으로 운영할 계획이지요. 지금도 순전히 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어요.”

▷지향하는 모델이 미국 헤리티지재단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공화당과 가치를 공유하는 보수의 싱크탱크로 정책과 전문가들의 플랫폼이지요. 여기서 개발한 정책은 필요한 곳에서 언제든지 가져가 활용합니다. 우린 기본적으로 보수이지만, 개혁적 보수입니다. 보수의 약점은 변화를 싫어하는 건데, 우린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합니다.”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알려져 있는데요, 언제부터 인연이 닿으셨나요.

“2006년 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서강대 은사인 남덕우 전 총리의 권유로 1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박근혜 후보 정책자문그룹에 들어갔지요. 거기에 최외출 영남대 교수,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등도 있었어요.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기) 공약도 그때 만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당시 대선 경선에선 패배했지요.“그랬지요. 대선이 끝난 2007년 말 정책자문그룹 송년회에서 당시 박 전 대표가 공부 모임을 계속하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까지 3년 정도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모임을 가졌어요. 그 공부 모임 멤버엔 이종훈 명지대 교수, 김영세 연세대 교수 등도 합류했어요.”

▷박 대통령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만 꼽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장점은 집중력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4시간 동안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박 대통령은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했어요. 경제 정책에 대한 이해도도 매우 높았습니다. 단점이라면 어려운 사람들을 자꾸 도와주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거죠.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서민들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재원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할 때가 많았어요. 박 대통령이 굉장히 냉정한 것 같지만, 가슴은 따뜻한 분이에요. 요즘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고, 뭐 그런 건 없었어요. (웃음)”

▷그동안 경제부총리 등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입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서운하지 않으세요.

“서운한 것 없습니다. 대선 이전부터 미래연구원을 독립적 싱크탱크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각엔 관심이 없었어요. 언론 하마평에 오를 때 그냥 웃었습니다.”

▷‘창조경제’는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그건 박 대통령 자신의 아이디어예요. 박 대통령은 원래부터 이스라엘의 벤처 창업 등 창업 경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과 창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그걸 해결하려면 창조경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창조경제가 김대중 정부의 ‘벤처 정책’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김대중 정부의 벤처 정책이 신기술에만 초점을 뒀다면 창조경제는 소프트웨어, 문화콘텐츠까지 폭을 넓힌 것입니다. 또 창조경제는 기술과 아이디어의 상업화부터 창업 인큐베이터, 관련 법률·제도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좀 더 종합적이고, 내용이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지요.”

▷불황 장기화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창조경제는 비전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당장 경기 활성화 효과가 있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위기 관리와 투 트랙으로 같이 가야 해요. 대통령이 창조경제만 강조하다 보면 관료들이 자칫 경기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는데, 그건 안 됩니다.”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서둘러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건설업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건설업은 서민경제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산업이에요. 건설업이 살아나려면 부동산 거래가 되살아나야 하죠. 건설업과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정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기를 살리려면 전통적으로 금리를 낮춰 돈을 풀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게 효과가 없습니다.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안 쓰니까요. 이런 때는 정부가 직접 소비하는 재정정책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는 문제가 있지요. 그건 ‘재정준칙’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재정준칙은 1년 단위로 재정적자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5년, 10년 단위의 중장기로 재정수지를 관리하는 거예요. 불황 때는 적자를 감수했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흑자로 돌려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어느 나라든 복지를 늘리려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증세 이전에 정부의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에서 탈루한 세금을 걷는 노력을 충분히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도 안 하고 증세부터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국민을 설득해 증세할 수밖에 없겠지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안 써서 후퇴 논란이 있었습니다.


“좋게 보자면 인수위가 경제이론에 충실했던 거죠. 경제민주화란 말은 경제학 용어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치적으론 잘못한 거죠. 사람들이 경제민주화란 말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 용어를 안 쓴 것은 실수입니다. 또 국정과제에 경제민주화 사항이 모두 들어가 있어요. 근데 포장지를 잘못 싼 거지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이고, 앞으로 하는 걸 보면 대통령 의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조언하신다면.

“소통입니다. 조선왕조에서 소통의 리더십이 돋보였던 세종대왕도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여론조사도 하고, 직언을 하는 신하를 옆에 두는 등 정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신하들에게 ‘내가 제일 잘못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소통이 부족하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해요. 그만큼 소통이 어렵지만, 중요합니다. 소통의 전제조건은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고, 신뢰가 안 생겨서 루머가 발생하게 마련이에요. 소통 없는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박 대통령은 소통에 각별히 신경을 더 써야 합니다.”

김광두 원장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린 정책자문그룹의 학자다. 1947년생으로 전남 나주가 고향이다. 광주일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하와이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서강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내기도 했다.2006년부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정책 자문에 응했다. 2010년 말 국가미래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4·11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정책 공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분과위원 22명(간사 포함) 중 홍기택 중앙대 교수 등 8명이 미래연구원 출신이었다. 새 정부의 윤병세 외교부, 류길재 통일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와 청와대 최성재 고용복지수석, 곽상도 민정수석도 미래연구원 멤버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