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영감

어디에 꽂히고 집중하는가에 따라 같은 것을 봐도 달리 생각하게 돼

이윤신 < W몰 회장·이윤신의 이도 대표 cho-6880@hanmail.net >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때 ‘멍 때린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 지금 할 일과 다음에 해야 할 일, 어제 했던 일과 오늘 할 일,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나 등으로 가득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1주일 내내 이곳저곳으로 일터가 바뀌고 매 순간 일정을 확인해야 차질이 없다. 이러한 시간의 부족함 속에 터득한 것이 이른바 ‘하면서 하는 것’이다.

직원들과 일상적인 소통 채널로 문자를 주고받는 나는 답을 기다리면서 신문 스크랩을 읽는다. 작업 스케치를 할 때는 전날 녹음한 역사 강의를 듣는다. 끊임없이 눈과 손을 움직이며 생각한다. 그런 나를 보고 딸아이는 혼미할 지경이라고 한다. 하면서 하는 일 중 하나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곳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대인관계에서 지쳤을 때, 아이디어가 맴돌기만 할 때 음악은 자신감과 함께 조언을 준다. 음악을 들을 때에는 제목이나 느낌 등을 적고 궁금한 것은 인터넷에서 확인한다. 음악은 가요와 팝, 월드뮤직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기지만 클래식을 가장 좋아한다.

음악보다 먼저 사랑한 것은 어린 시절 글을 깨치면서 빠졌던 만화다. 네 살 정도에 한글을 깨친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만화가게를 찾았다. 지금도 주인아주머니 모습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몰입했었던 것 같다. 주로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순정만화를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 본 만화를 그리고 대본까지 쓴 후에 주인공 역을 재연해 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는 책을 읽을 때 대화내용에 따라 각각 다른 목소리로 감정을 살려 친구들을 즐겁게 하던 일이 기억난다. 어른이 돼서는 그럴 기회가 없고 알량한 체면 때문에 타인 앞에서 우아하게 보이려니 감춰진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가끔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성대모사를 하기도 한다. 아직까지 연기 소질을 살릴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플라톤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창작이나 창의력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재결합해서 빛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영감이라는 것은 ‘어디에 꽂히는가, 어느 대상에 집중하는가’에 달려 있다. 동일한 것을 봐도 다르게 느끼고 해석해 수용하는 것이 영감이 아닌가 한다.

이윤신 < W몰 회장·이윤신의 이도 대표 cho-688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