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그리스정교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기독교 교파 중 그리스정교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러시아정교 루마니아정교처럼 그리스 지역에 뿌리 내린 동방정교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동방정교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교리나 종교의식에 그리스말이 공식언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정교(正敎·orthodox)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원리주의에 충실하다. 교회 안에서도 사도와 평신도는 장막으로 가려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예배를 드리는 등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기독교의 여러 계파 중 유일하게 예수의 직계 제자인 성 베드로 등에 의해 만들어져 기독교의 본산(本山)이란 자부심이 강하다.

그리스정교와 로마가톨릭만큼 역사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해온 종파는 없을 것 같다. 두 종파가 갈라선 것부터가 그렇다. 로마의 영토가 넓어지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두 아들에게 로마의 동쪽과 서쪽을 나눠 통치하게 한 것은 서기 395년이다. 이후 동로마와 서로마는 각각 비잔틴제국과 프랑크왕국이 세워지기까지 서로 처절한 견제를 하게 된다. 기독교가 로마교회와 비잔틴교회로 나뉜 것도 이때다. 두 교회가 갈라진 결정적 계기는 비잔틴제국의 레오3세가 내린 성물(聖物)숭배금지 명령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한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베드로 등 성인의 조형물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는 비잔틴교회와 야만족인 게르만족을 교화하려면 이런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로마교회의 대립이 격화된 것이다. 결국 로마교회 교황과 비잔틴제국의 교황격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상호 파문(1054년)을 결행, 두 종파는 완전히 결별했다. 교리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리스정교는 기혼자에게도 서품을 주지만, 로마가톨릭은 이를 금지한다. 교황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지상대리인으로 인정하고 절대적 권위와 권력을 부여하는 로마가톨릭과 달리 그리스정교는 총대주교를 대리인이 아닌 심부름꾼으로 인식한다. 정교회의 조직엔 상하관계의 개념이 없고 중요한 사안은 8개국에 있는 총대주교청이 합의해서 결정한다.

역사적 성장배경도 다르다. 가톨릭은 제국주의 시절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서유럽의 강국들이 총과 성경책을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 남미와 아시아에선 로마가톨릭이 일찍부터 번성했다. 반면 그리스정교는 로마의 동쪽인 동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리스정교가 번성한 나라는 대부분이 사회주의로 기울었다.

19일 거행된 로마가톨릭 새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미사에 그리스정교회 수장인 바르톨로뮤 1세 이스탄불 총대주교가 참석했다. 두 종파의 수장이 만나는 것은 1054년 상호 파문 이후 959년 만이다. 형제이기에 더욱 갈등해왔던 두 종파의 화해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