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출신 귀농男, 블루베리로 한해 3억 대박

매년 1000여 명씩 인구가 줄어 고민이 깊던 경북 상주시는 최근 전국에서 몰려오는 이주민 덕에 활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에만 총 520가구 966명이 상주시로 주소를 옮겼다. 올 들어 2월 27일 현재까지 110가구 193명이 상주시를 택하면서 말 그대로 이주 열풍이 불고 있다.

이주자 대부분은 퍼스트 잡을 접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귀농·귀촌’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온다. 상주시가 자체 설문 조사한 결과 상주시로 귀농한 이들 중 83%는 40~50대로, 대부분 은퇴 이주자였다. 귀농 전 직업도 사무직 혹은 전문직이 42%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심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시골의 한적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상주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상주시는 ‘농업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평지부터 중산간지대와 산간지대가 모두 있어 감·시설오이·한우·포도·벼·오디·사과·배 등 다품종을 경작할 수 있다. 평균 땅값도 3.3㎡당 10만 원으로 서울 및 경기도·강원도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땅을 활용해 새로운 소득원을 확보할 때 부담이 적다. 또한 전국 어디나 2시간대에 접근할 수 있고 서울에서 고속도로도 2시간~2시간 30분 정도면 이동할 수 있다. 한적한 농업 환경과 도심 접근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수도권 은퇴자들이 선호한다. 50대, 나무 경작 ‘추천’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하는 이근홍(61) 씨는 안정된 노후 생활과 농업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서울에서 이주했다. 한때는 삼성중공업 임원이라는 타이틀도 가졌고 사업으로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성공’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게 거품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부추기니까 자아도취되기 쉬웠지만 내 본래 위치와는 거리가 있더라. 거품을 걷어내면 그렇게 허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더라”고 이 씨는 회상한다. 언제 낙오자가 될지 모르는 경쟁사회에서 그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생 후반부에 걸맞은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 이곳 상주로 왔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잖아요. 노후에도 일은 필요한데, 무슨 일을 할 것이냐 생각해 봤을 때 사업도 불확실하고 회사에선 은퇴했고 농업이 희망이다 싶더군요. 시골이 경치도 좋고 혹여 농사가 망하더라도 토지는 남겠죠.”

2006년부터 상주에 3.3㎡당 5만 원을 주고 3만6355㎡(1만1000평)의 토지를 구매하고 서울과 상주를 오가며 3년 동안 블루베리를 심었다. 상주에 곶감·한우 등 특산품이 많지만 기존 농민들과 경쟁하지 않는 품목을 찾은 게 블루베리다. 또한 한 번 심으면 손을 많이 타지 않는 나무를 경작해야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다고 봤다. 2009년부터 아내와 함께 아예 내려와 살고 있다. 낙동강 바로 앞 배산임수 지역에 터를 잡은 그의 집은 3305㎡(1000평)나 되는 마당에 20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놓고 뒤로는 블루베리 비닐하우스가 드넓게 자리하고 있어 탁월한 경치를 자랑한다. 땅 사고 집 짓는데 총 10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여기에 묘목 값 등으로 3억 원 정도를 투자했다. 2009년부터 소득이 발생해 지금은 연간 순이익이 1억5000만~2억 원에 달한다. 블루베리 나무가 적응을 마치는 2015년 정도 무렵에는 3억~4억 원으로 순이익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놀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자녀들도 처음에는 왜 시골에서 고생하려고 하느냐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더 좋아하죠.”이 씨는 이 지역에서도 성공 정착 사례로 꼽힌다. 우선 3만3050㎡(1만 평)에 달하는 블루베리 농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자동화 설비 등을 잘 갖춰 비교적 이른 시간 내에 열매를 거두면서다. 이 씨는 은퇴 이주자들에게 3305㎡ 내외 규모로도 전략에 따라 1억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은퇴자들은 노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부가 생산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와 품종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시골이라고 꼭 농사만 지어야 할 이유는 없다. 2009년 귀농한 조용권(56) 씨는 전통문화를 관광 상품화하는 방법으로 상주에 정착했다. 한 중소기업의 중국 지사에서 15년간 섬유기계업에 종사하다가 명예퇴직한 그는 다시 중국에서 재취업할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인지 기로에서 후자를 택했다. 조 씨의 고향은 대구지만 아버지의 고향인 상주로 내려와 전통 맥 잇기 사업에 힘쓰고 있다. 조 씨는 전통문화 알림이를 자처하고 정부 지원 사업을 십분 활용했다.

가장 먼저 지자체에서 모집하는 문화관광해설사에 응시해 합격했다. 또한 농업진흥청의 전통문화 맥 잇기 사업에 신청해 마을의 구전 자본을 스토리텔링으로 관광 상품화하는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관광부의 전통 한옥 고택 체험 사업에 선정돼 전통 한옥 체험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전통문화 전도사로 소문이 나 여러 강연에서 수입도 올리고 있다. 현재는 문화관광해설사와 강연료 등으로 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소득을 얻지만 정부 지원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올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와 별개로 감나무를 심어 꾸준히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상주도 그렇고 시골에는 고택·정자·구전 등 전통 자원이 많아 농사뿐만 아니라 문화 관광과 연계된 일을 할 수 있어요. 이주해 연착륙하기까지 시간이 5년은 걸리는데, 그 사이에 이런 식으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겠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돈도 버니까 즐겁습니다.” 농산물 유통에서 블루오션 찾아라

은퇴 이주를 망설이는 사람들은 친인척과 이웃과 멀어져 나 홀로 외딴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한다. 이럴 땐 ‘공동체’를 형성해 이주하는 방법도 있다. 상주이안녹동마을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총 30여 가구가 집들을 맞대고 옹기종이 모여 살고 있다. 기존 12가구에 귀촌 목적으로 내려온 18가구가 합류해 마을을 형성했다.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귀촌했지만 대다수는 텃밭을 가꾸거나 경작을 시작했다. 심심할뿐더러 농업에는 세제 등의 혜택이 있어서다. 공동체를 구성한 만큼 공동경작도 한다. 집 앞 너른 터에 연꽃을 심어 올해부터 공동판매해 수익을 배분할 예정이다.

상주시는 지난해부터 귀농귀촌특별지원팀을 꾸려 연중무휴 상담 및 지원에 나서고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지원이 바로 ‘소규모 전원마을 조성 사업’이다. 5~19가구의 소규모 공동체를 구성하면 진입도로 공사나 도로 포장을 지원하고 전기·통신시설, 오·폐수 시설 등을 설치해 준다. 안영묵 상주시청귀농귀촌특별지원팀 계장은 “이주자들이 새롭게 농가를 조성할 때 고민하는 부분이 상하수도와 도로 등 시설이기 때문에 여러 지원책 중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현재 상주시에는 소규모 전원마을 10개소가 조성되고 있다.

새로운 인생 2막을 꿈꾸는 은퇴 이주자에게 ‘귀농·귀촌’은 신세계가 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수다. 안 계장은 무엇보다 ‘3척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이 그것으로, 농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태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기대를 잔뜩 안고 왔다가 실패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안 계장은 귀띔했다.

또한 50대 은퇴 이주자가 귀농 성공을 하기까지 평균 기간은 8년, 비용은 10억 원으로 잡는다. 퍼스트 잡 시절부터 교육과 주택 구입, 기술 습득 등의 준비 기간 3년과 새로운 품종을 심어 농가 소득을 얻기까지 5년이 걸려서다.

이때 주택 마련과 기반 시설에 2억 원, 농기구 구입 1억 원, 토지 구입비 3억 원(10만 원×3000평)이 필요하며 소득이 부족한 5년 동안 보유해야 할 여유 자금 4억 원을 더해 총 10억 원을 평균 비용으로 잡는다. 물론 임대를 통해 최소 3000만 원으로도 귀농 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만 50대 이상 은퇴 이주자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방법이다. 블루오션은 ‘유통업’에 있다. 기존 농가는 생산 기능 이외에 유통 기능이 열악한 상황이다. 은퇴 이주자들이 기존 네트워크와 마케팅 능력 등을 활용해 유통 분야를 활성화한다면 새로운 소득 창출의 기회이자 ‘노후 대박’을 꿈꿀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