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0명 對 100명…한국 통계의 현실

"국가통계는 나라 운영의 밑자료
중요성 비해 시스템·운영 열악
신규 통계수요 충족 채비 갖춰야"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통계학 ksh@snu.ac.kr
국가 통계는 한 나라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기본 자료다. 국가를 올바로 운영하고 발전 방향에 따른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 정보이다. 국가 통계는 국가 운영의 핵심적 요소여서 잘못 작성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국가적 손실은 엄청나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정확성과 시의성이 높은 국가 통계의 생산이 필수적이다. 통계의 기반이 없는 올바른 정책 수립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386개의 통계 작성기관에서 904종의 국가승인 통계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통계의 품질은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국내 통계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통계 생산 과정은 기획, 조사, 분석 및 가공, 공표의 4단계로 구분되는데 통계 생산기관에 기획·분석 인력이 절대 부족해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통계 자료가 잘 공유되지 않는 것도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된다. 정부 기관의 개별 행정자료는 통계 활용이 목적인 경우에 개방해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 변화를 정확히 반영할 새로운 통계의 개발이 저조하고, 통계의 중요성에 대한 위정자들의 인식이나 사용에도 문제가 많다. 한국의 국력에 비해 국가 통계시스템이나 운영이 열악한 수준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몇 년 전 감사원은 ‘국가 주요 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에서 “상당수의 통계 작성기관에서 자료 수집, 표본 추출, 모집단 추정에서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국가 통계가 아직도 주먹구구식이고 정책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최근 신문에 실린 ‘가구소득 양극화 심화로 가구당 빈부 격차 확대’란 기사도 실은 ‘1인 가구의 급증’이라는 사회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 발생한 통계 착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바른 국가 통계에는 이런 사회 변화상을 적절히 보정해주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통계 개발이 시급한 분야는 건강·문화·범죄·빈곤·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 분야, 외국인 투자·기업의 해외활동 같은 경제 분야 및 지역 통계 분야를 꼽을 수 있다. 해당 부처에 통계 전담 조직이 없고, 새로운 통계 수요가 제기되더라도 예산과 조직의 제약으로 제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과 단위 이상의 통계 전담 조직을 가진 부처는 거의 없다. 최근 들어 지역 통계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시·도 수준에 소규모 통계계만 있을 뿐이고 읍·면·동은 통계인력이 전무한 실정이다. 지자체 중 규모가 가장 큰 서울시의 통계 전담 인력도 10여명밖에 안된다. 일본 도쿄의 통계 전담 인력이 100명을 웃도는 것과 대비된다. 서울시가 필요한 새로운 통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이유다.정확하며 시의성 있는 국가 통계는 박근혜 대통령이 구상하는 창조경제의 실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국가 통계의 선진화 없는 국가 선진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 통계의 중요성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인식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지난 20여년간 통계청장 자리는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로 채워졌다. 청장의 재임기간 또한 평균 1년7개월로 단명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장·차관급 인선 기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번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서도 그리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선진국들은 통계 수장의 자격조건으로 전문성을 가장 앞세운다. 통계 수장의 재임 기간도 길어 국가 통계 조직은 정치 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호주는 7년 임기의 통계청장을 통계전문가 중에서 선출해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한다. 그렇게 임명된 통계청장은 국무회의에도 참석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도 통계전문가를 통계청장에 앉히고, 임기도 최소 4년 이상 보장한다.

통계 행정의 전문성을 강조해온 통계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통계행정의 후진성이 안타깝다. 앞으로는 통계행정 경험이 풍부한 실무 전문가나 행정 능력이 뛰어난 통계학자들에게 통계 행정을 맡겨 국가 통계의 전문성을 살려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성현 <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서울대 명예교수·통계학 ks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