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찬장의 그릇을 보이게 하자
입력
수정
예쁘게 쌓아놓기만 해도 인테리어어릴적, 혹은 기억이나 사진 속 재래식 부엌을 떠올리면 선반에 가지런히 엎어져 있는 국사발과 밥공기가 함께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그릇의 모습 중 하나다. 요즘 어느 집에나 있는 부엌 시스템에서 찬장을 오픈한다는 것은 품이 드는 일이다.
멋을 좀 아는 엄마가 돼보는 재미
이윤신 W몰 회장·이윤신의 이도 대표 cho-6880@hanmail.net
그러나 그런 시도는 나에게 생활의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우선 시각적으로 부엌이 아름다워 보인다. 손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 그릇은 한폭의 정물화처럼, 혹은 멋진 인테리어숍처럼 보일 수도 있다. 1992년에 인사동 쌈지길이 오픈했다. 열심히 만들고도 판매할 여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숨어있는 공예가들에게 대중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천호균 쌈지그룹 회장의 의도로 만들어진 공예전문 매장이었다. 나선형으로 둥글게 난 길을 따라 예닐곱 평의 매장이 30~40개 들어섰는데, 그중 ‘이도’라는 이름으로 이윤신의 첫 매장이 문을 열었다. 지금은 가회동에 번듯하게 모습을 갖췄다. ‘주식회사, 이윤신의 이도’가 회사 이름이 되고 이도가 브랜드가 돼 갤러리, 도예아카데미, 그리고 매장과 카페로 구성됐지만 처음엔 이렇게 조그맣게 탄생했던 것이다.
나는 그릇을 사랑한다. 단 한 시간이라도 그릇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만들고도 너무 좋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다. 만지고, 들여다보고, 담아보고, 씻어보고 또 들여다본다.
굳이 음식을 담아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릇 자랑을 할 수 있다. 다른 작가의 그릇도 그렇다. 맘에 드는 그릇이 눈에 띄면 지나치지 못하고 그자리에 멈춰 선다. 만져보고 사랑을 느끼다 드디어는 내것으로 만든다. 당연히 그 그릇들은 이도에서 산다. 우리 직원들은 작가들의 노고를 알기에 나에게도 할인해 주지 않는다. 나도 깎지 않는다. 작가들의 그릇 앞에서는 나 역시 한 사람의 구매자일 뿐이다. 그렇게 사 모은 그릇들로 나의 부엌이 꾸며진다. 색상과 상관없이 용도별로 쌓아본다. 국그릇, 밥그릇, 작은 접시, 중간 접시, 면기 이렇게 포개놓는 것이다. 엎어놓는 것보다 바로 꺼내어 쓸 수 있게 위로 향하게 한다. 먼지를 두려워하지는 말자. 그보다 더 즐거운 일들이 기다린다. 아이들이 스스로 쓰고 싶어하는 그릇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문화에 대한 접근이 수월해질 것이다. 멋을 좀 아는 부인, 뭔가 특별한 엄마가 되기에는 참 쉬운 방법이다.
이윤신 < W몰 회장·이윤신의 이도 대표 cho-688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