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댐 수위 낮춰야" 울산시 "무슨 소리, 식수도 급한데…"

문화재청·울산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논쟁 현장 가보니…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11일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열린 현장 설명회에 참석해 “댐 건설 이전의 단계로 돌아가야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넘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울산 울주군 대곡천 중류의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에 대해 문화재청과 울산시 관계자가 신경전을 벌였다.

11일 오후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근처에서 기자들 대상으로 연 현장 설명회에 박맹우 울산시장이 갑자기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반구대 암각화의 현실을 알리고 싶어 만사 제치고 이 자리에 왔다”는 박 시장은 “문화재청이 울산은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강경환 문화재청 반구대암각화전담태스크포스(TF) 팀장은 “문화재청의 1차적인 미션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날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벌어진 두 기관의 갈등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문화재청이 서울대 석조문화재보존과학연구회에 의뢰한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 연구 용역 결과 보존 대책으로 사연댐 수위조절과 물길 변경, 차수벽 설치안 등이 제시됐다. 이후 2009년 국무총리실 조정회의를 통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방법이 결정됐다. 문화재청과 울산시 모두 여기에 합의했다.

사연댐 수위는 평소 40~60m 수준이다. 반구대 위치는 53~57m로 수량이 많을 때는 물에 잠기게 된다. 수위를 낮추는 것이 최선의 보존대책이라고 문화재청은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울산시는 식수원 부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2009년 합의의 전제조건은 경북 청도군 운문댐에서 1일 7만의 물을 공급받는 ‘울산권 맑은 물 공급사업’ 추진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2011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때문에 보존 대책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시가 내놓은 방안은 생태제방 조성이다. 반구대 암각화 주변에 제방을 쌓아 물과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암각화도 보존할 수 있고 식수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보존을 위해선 일부 변형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세계유산적 관점에서 볼 때 생태제방은 완전성, 경관보존원칙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준비단계인 잠정목록에 반구대 암각화를 올려놓은 상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생태제방을 쌓게 되면 맞은편 산자락을 인공적으로 잘라내 주변 경관을 훼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선 수위를 낮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주변 경관을 명승으로 지정하고 경관 보존 지침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울산시는 생태제방 조성안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971년 반구대 암각화를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이날 설명회에 참석, “처음 발견했을 당시와 비교해 보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그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위 그림에서 동물의 종류를 알아맞히기란 쉽지 않았다.

■ 울산 반구대 암각화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대곡천 중류 암벽에 있는 암각화. 반구대는 거북이가 넙죽 엎드린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전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285호로 고래 호랑이 사슴 등 동물 24종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1971년 발견됐지만 1965년 완공된 사연댐 때문에 연간 6~8개월은 물에 잠겨 있어 훼손되고 있다.

울산=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