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주기로 발생…치료약 없어 더 무서운 조류 인플루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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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닭·오리 많이 키우는 중국·동남아서 나타나…AI, 치사율 60%중국 반환을 2개월 앞둔 1997년 5월 홍콩.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감에 걸린 3세 소아가 사망했다. 기존 독감 치료제가 전혀 듣지 않는 가운데 감염자는 18명까지 늘었다. 시민들은 1968년 유행해 세계로 번지며 80만~100만명이 사망한 ‘홍콩 독감’의 악몽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1997년 홍콩서 첫 확인…한국도 2003년 이후 4차례 발생
H5·H7 인체 감염률 높아…이번에 발견된 것은 'H7N9'형
독감의 원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독감이 처음 인간에게 감염된 것이 아니라 닭 등 가금류(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조류 사이에 유행하는 독감이 인간에게도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됐다.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시작이다. 지난달 31일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된 신종 조류 인플루엔자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발병 2주가 채 안 되는 사이에 12일 현재 38명이 감염돼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유형이라 치료약조차 없다는 소식에 공포감도 높아지고 있다.○동아시아 일대 2~3년 주기로 발병
조류 인플루엔자는 1997년 홍콩에서 발견된 이래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있다. 2005년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당시에는 140명이 감염돼 절반 정도가 사망하는 등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2~3년에 한 번꼴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신종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이전에 500명 이상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돼 34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감염자가 많지는 않지만 일단 걸리면 치사율이 60%가 넘어 발병할 때마다 해당 국가와 인접 국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발생 연도만 놓고 보면 조류 인플루엔자는 최근 등장한 질병이지만 조류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과정이 1997년 확인된 것일 뿐 과거에도 조류 인플루엔자로 추정되는 질병이 인류를 감염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많다.
겨울철마다 사람들 사이에 독감이 유행하듯 조류 사이에도 계절마다 독감이 반복된다. 이것이 특정한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는 것이 조류 인플루엔자다. 인간이 닭이나 오리 등 가금류를 사육하고 가까이 하는 이상 감염 가능성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이유다.○H5, H7형 인체 감염 가능성 높아 이번에 중국에서 발병한 신종 조류 인플루엔자는 ‘H7N9’형으로 불린다. 언론에서 흔히 등장하는 단어지만 이 뜻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잡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독감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전에 지레 위축될 수 있다. 하지만 의미를 알면 조류 인플루엔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유행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홍콩에서 처음 나온 조류 인플루엔자는 H5N1형이었으며 이 외에도 H7N7, H9N2 등이 있다.
H는 ‘해마글루티닌(haemagglutininn)’의 줄임말로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단백질을 뜻한다. N은 ‘뉴라민가수분해효소’로 바이러스가 감염을 위해 세포막을 파괴하고 침투하는 데 사용된다. 각 알파벳 뒤에 붙은 숫자는 각각의 종류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해마글루티닌은 16가지, 뉴라민가수분해효소는 9가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둘을 곱하면 산술적으로 144종류의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조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H7N9과 같은 호칭은 의학적으로만 의미를 가질 뿐 언론을 통해 자주 언급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H 뒤의 숫자는 좀 더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의학적으로 H5와 H7으로 시작하는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람에 전염될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금류 75도 이상 끓이면 안전
한국에는 2003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인간이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조류 인플루엔자인 H5N1형이 가금류에서 발생했다. 아직 인체에 감염된 사례는 없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상대적으로 예방 조치가 미흡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동우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통계적으로는 중국보다 이집트나 인도네시아에서 발병하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더 많다”며 “단순히 위생상태의 문제라기보다는 가금류 사육이 많다 보니 인체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의 변이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H5N1형은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 가금류를 접촉하는 사람들이 많이 걸렸지만 최근 유행하고 있는 H7N9형은 위생 관련성을 확인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상하이와 저장성 일대는 한국인이 자주 찾는 관광지가 많은 곳이지만 한국 정부는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에도 여행 제한 조치를 내리지는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람에 대한 전파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분명 신종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질병관리본부는 중국 현지의 가금류 농장과 재래시장은 방문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열에 약해 75도 이상에서 5분만 가열하면 없어진다.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조류라도 익혀서 먹으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