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하루키 열풍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어제 0시 도쿄 시부야의 다이칸야마 쓰타야 서점.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을 사기 위해 밤새 줄을 선 사람들이 문 앞으로 한꺼번에 몰렸다. 150여명의 하루키스트(하루키의 열성팬)들은 문학평론가 후쿠다 가즈야와 함께 카운트다운까지 하며 열광했다. 다른 서점들도 평소보다 3시간이나 이른 아침 7시에 문을 열었다. ‘1Q84’ 이후 3년 만의 신작인 만큼 팬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370쪽짜리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는 36세 철도회사 직원이 대학 때 친한 친구 4명에게 절교당하고 상처를 받았다가, 여자친구로부터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16년 전 절교당한 이유를 찾아 떠나는 순례기라고 한다. 책을 펴낸 분게이순주(文藝春秋)는 두 달 전부터 제목만 공개하고 내용은 일절 비밀에 부쳐왔다. 신비주의 마케팅도 가세해 사전예약만 50만권을 넘었고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했다. 386만부를 기록한 전작 ‘1Q84’의 판매부수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출판계 역시 바쁜 모양이다. 지난 2월 일본 신문에 ‘무라카미 하루키: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설이 4월에 나오다’는 한 줄 광고가 뜨자마자 10여군데 출판사가 판권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Q84’가 국내에서 200만부나 팔렸으니 하루키만 잡으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인 셈이다.

이토록 인기 있는 하루키도 시작은 미약했다. 와세다대 연극과에 다닐 때 격렬한 학생운동에 휘말렸고 신주쿠 서쪽 지하도에서 노숙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재즈다방 피터 캣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스물아홉 살 때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지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은 신인 등용문인 아쿠타가와상에 연거푸 떨어졌다. 이 때의 좌절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그는 몇 년 전 에세이집에서 털어놨다.

이런 인고의 세월을 견딘 끝에 1987년 ‘노르웨이의 숲’(한국판은 ‘상실의 시대’)으로 국민작가 반열에 올랐다. 1960년대 일본 전공투 세대가 80년대에 겪는 상실감을 간명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신작 소설 한 편으로 전 세계를 흥분시키는 그의 위상을 보면서 새삼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우리에게는 왜 이런 작가가 많지 않은가. 툭하면 설익은 목소리로 정치훈수나 두는 문인들만 늘어나고…. 가뜩이나 책이 안 팔린다는 시대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명구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