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 없인 어떤 자유도 없다"…프리드먼·뷰캐넌에 영향

민경국 교수와 함께하는 경제사상사 여행 (31) '시카고학파의 창시자' 프랭크 나이트

불확실한 세계서 '자유' 의미…위험 감수한 기업 이윤 정당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 지지

"자유시장은 불평등 심화" 주장…학계서 옳지 않다고 비판받아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유럽 등 지구촌은 개인의 자유를 유린하는 집단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공룡같이 거대한 정부에 점차 예속되고 19세기에 습득했던 자유주의 유산은 소멸돼 갔다.

이런 가운데 시장경제와 자유기업의 윤리적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경제학에 입문, 시카고학파를 창시한 인물이 프랭크 나이트다. 아버지가 농장을 경영하던 가정에서 11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19세기 자유주의가 침몰한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철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한때 철학과 윤리학에 심취했던 나이트는 시장경제의 윤리적 기초는 효율성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자유사회에서 인간관계는 정부, 개인, 집단의 강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발적인 교환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시장 교환이 생겨나면서 인류는 원시적 삶을 극복하고 비로소 문명화된 삶이 가능해졌다는 게 그의 역사해석이다.

나이트가 경제자유를 각별히 중시한 것은 그것이 언론·출판표현의 자유 등 시민적 자유 및 참정권과 같은 정치적 자유를 지키는 보루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경제적인 자유 없이는 어떤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치·경제적인 자유의 존재 조건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알려진 확실한 세계에서는 자유라는 말이 불필요하다고 나이트는 설명한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만이 자유의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와 함께 불확실성은 자유기업과 시장경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는 게 그의 통찰이다.

따라서 나이트는 이윤도 불확실성과 관련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손해가 생길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을 감수하고 경제활동을 수행한 결과로서 남는 게 이윤이라고 강조하면서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은 모험심에서 책임 있게 불확실성을 떠맡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장경제가 눈부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책임 있는 모험적 기업가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시장관이다.

아쉽게도 나이트는 위험 감수를 뛰어넘어 이윤기회를 만들어내고 신지식을 발견하는 기업가적 발견과정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윤은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이윤의 도덕적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나이트는 시장경제를 옹호하면서도 윤리적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재산 상속 등으로 기회균등이 상실돼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배 결과는 도덕적 근거가 허약하다고 한다. 타고난 재주는 노력과 무관한 출생이라는 ‘우연’에 따른 것이기에 그런 재주에 의한 경제적 성공도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소득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자유시장이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나이트의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캐나다의 유명한 싱크탱크인 프레이저연구소가 보여주고 있듯이 빈곤층 10%의 소득 분배율은 경제자유의 정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타고난 재주에 의한 소득결정은 불로소득이라는 이유로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재주를 타고났는지를 발견하고 그 재주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기업가적 노력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나이트는 또 자유시장은 경쟁을 제한하는 독점과 담합이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고 봤다. 시장경제는 정부의 도움이 없이는 자생적으로 자유 경쟁이 확립될 수 없고 그래서 반독점 정책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입장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전적으로 다른 시각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독점과 담합의 문제는 정부의 시장개입에서 야기된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기업의 시장 진입에 법적 장애물이 없으면 경제력 집중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도입한 대기업 규제는 자유경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 기업 활동의 발목 잡기였다는 미국과 독일의 역사적 경험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이트는 뉴딜정책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고전적 자유주의를 추종해 시장의 자기 치유력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그는 불경기 때 균형예산 대신 조세를 삭감하고 지출을 늘리는 등 물가인상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정부가 확장정책을 통해 고용증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이트는 간섭주의의 거장 케인스보다 먼저 ‘케인스 처방’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자’라고 부른다.

나이트는 시장경제에 대한 간섭을 옹호하면서도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비판했다. 과학적 유토피아를 만들어 개혁하는 것은 이성의 남용이라고 말하면서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에서 포괄적인 계획경제는 비효율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시민의 자유도 위협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이트는 온건한 재분배정책, 독점규제, 경기정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3의 길’을 윤리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런 지적 무기를 가지고 시카고대의 바이너, 헨리 사이먼 등과 함께 시카고학파를 구성, 1930~40년대에 위협적이었던 집단주의 세력과 싸웠다.
나이트 사상의 힘 - 교육 통해 시장경제 수호…재산권이론 기초 확립도

보통 학자들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끌거나 자신의 제안을 정부 측에 전해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운다. 그러나 나이트는 주로 교육을 통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길러낸 인물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먼, 스티글러 등이다. 1950년대 이후 이들이 주도해 스승이 창시한 시카고학파를 이끌면서 시장경제와 자유기업을 지켜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나이트와 그 제자들 간 차이가 있다. 나이트는 재분배와 독점정책 등 간섭주의를 옹호했지만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시카고학파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했다. 그들은 수리계량경제학의 방법을 애호하지만 나이트는 그런 방법으로는 자유기업과 시장경제의 본질을 캐낼 수 없다고 경고한다. 효용극대화와 비용-편익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공리주의도 자본주의의 본질인 자유를 이해하는 데 쓸모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먼이 스스로 밝히듯이 경제자유의 중요성, 경제자유와 시민적 자유 간 관련성 등 경제자유에 관한 자신의 철학적 기초는 전적으로 그의 스승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거목 제임스 뷰캐넌이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전향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도 스승 나이트의 강의였다.

나이트 사상의 영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도로의 혼잡을 막기 위해 도로세의 형태로 정부가 개입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압도할 때 그는 도로에 혼잡이 생겨나는 이유가 도로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없기 때문이라며 도로를 사유화하면 통행료(도로이용가격)를 통해 혼잡이 저절로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를 통해 그는 희소성에 대한 시장의 효율적 해결의 제도적 조건이 재산권 확립이라는 재산권이론의 기초를 확립했다.

시장에서 버는 소득은 개인의 타고난 재주에 좌우되는데 이런 분배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게 나이트의 생각이다. 이 같은 사상은 미국의 사회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의 토대가 됐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롤스는 시장을 반대하는 강력한 지적운동을 이끌었고, 특히 그의 분배사상은 유럽 복지국가의 철학적 기초가 됐다.

나이트는 생산기간을 통해 자본을 측정하고 이자율을 시간선호로 이해하는 하이에크 등의 오스트리아학파와 세기적 대결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본을 물리적으로 합하고 이자율을 자본의 생산성으로 이해하는 자신의 자본론으로, 오스트리아학파를 주류경제학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그의 이론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