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화가 오치균 씨 개인전, "진홍빛 생명력·곡선에 반해 감나무 그림 6년 매달렸죠"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에 전시된 오치균 씨의 유화 ‘감’.
시골집 뒤뜰 진홍빛 감과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꿈틀거린다. 사실 바로 앞에서 보면 이건 감이 아니다. 붉은색 원일 따름이다. 그러나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사실적인 질감과 알록달록한 색감에서 힘이 넘쳐난다. 강인한 생명력을 피워내는 중견 화가의 귀소본능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서양 화가 오치균 씨(57)의 감나무 그림에서는 강렬한 생명력과 몽환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과 두가헌갤러리에서 오는 28일까지 펼치는 오씨의 개인전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6년 동안 작업한 대형 감나무 풍경화 10여점이 걸린다. 그는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물감을 덧칠하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활용해 시골 감나무와 강원 사북면 탄광촌, 서울,뉴욕 등의 도시 풍경을 주로 그린 작가다. 1998년작 ‘사북의 겨울’(108×162㎝)이 2007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6억181만원(503만1500홍콩달러)에 낙찰돼 자신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감나무를 양파 껍질 벗기듯 풀어냈다. “형제들과 감을 따고, 엄마가 시장에 가서 팔던 유년시절 고향 땅(충남 대덕)에 대한 기억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변했고, 빨갛게 떨어진 감은 어떤 시보다 강렬하게 제 귓속에 바삭거립니다. 2008년부터 ‘감’이라는 소재로만 작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마티스의 선이 갈수록 단순해졌듯 감을 계속 그리다 보니 무언가 길이 보이는 것 같더군요.”

여명에 빛나는 감, 한낮의 햇빛을 머금은 감, 넝쿨 위로 감겨 올라간 감나무 등이 잘 익은 ‘희망의 빛’처럼 다가온다. 감나무의 두터운 마티에르(질감)와 능숙한 손맛 역시 압권이다. 다양한 리듬으로 휘몰아 감기고 뻗어 나가는 가지들은 고향과의 소통 방식을 드러낸다. “계산적으로 물감을 섞고 바르는 것이 아니에요. 한번 물감을 찍고 뒤에서 전체적인 조형과 색감을 살펴보는 것도 거의 없어요. 이른바 ‘필(feel)’이라고 할까요. 아무리 큰 나뭇가지라도 화면 앞에 서서 물감을 섞고 바르는 과정을 감으로 한 번에 해내요.”

그는 “대상이 충동질해서 그릴 뿐이지 그림에 메시지를 넣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김훈은 “오씨의 감나무 그림은 땅속의 물과 함께 하늘에 가득 찬 시간의 자양을 빨아들여서 쟁여 놓은 열매”라고 평했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