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김중수 총재가 언어의 혼란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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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대한 非이성적 확신이며,국가 기구 중 독립성과 평정심, 이성의 상징물이라면 바로 중앙은행을 말한다. 그것은 화강암처럼 차갑고 무겁고 엄중하다. 그러나 종종 약점도 드러낸다. 인간적 결함일 수도 있고 집단적 오류일 수도 있다. 지난주의 금리동결 조치도 그런 사례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일부 금통위원에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수치를 대보라며 강박했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수치는 너무 자주 바뀌고, 종종 너무 늦고, 거의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판독하기도, 그것을 증거로 삼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수의 세계에는 미지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懷疑 없는 확신은 퇴로 봉쇄일 뿐
中企대출도 중앙은행 임무아니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경제는 수치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돈 풀어 경제 살린다는 명제부터가 실은 그럴듯한 신화다. 효과도 없는 포퓰리즘적 구호가 바로 금융완화요 금리인하다. 잘해야 “앗 뜨거워, 앗 차가워!”를 되풀이하는 바보들의 샤워 꼭지다. 효과라는 것조차 빈부격차를 벌리고 투기꾼 좋은 일만 시킨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이게 진실이다. 판단을 중지하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금언도 그렇게 나왔다. 이번 금리동결을 판단 중지였다고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김 총재와 금통위의 지난주 결정은 충분히 논쟁거리가 된다. 김 총재는 ‘쉬운 정책과 올바른 정책’을 애써 구분지었지만 그럴수록 위험한 확신의 냄새가 풍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정책도 불완전한 정보들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수치들만해도 그렇다. 지난주 한은이 내놓은 어떤 수치에서도 경기가 돌아서거나 경제가 정상화된다는 확신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성장률이 줄곧 하락세라는 점, 국내총생산(GDP) 갭이 마이너스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 민간소비가 제자리걸음이라는 점, 설비투자는 감소추세라는 점, 제조업 생산도 전기 대비 마이너스라는 점이 자료에는 또렷이 적시돼 있다. 물가 역시 3월에는 마이너스였고 근원 물가도 전년비 1.5% 상승에 그쳤다. 경기회복세 둔화를 의미하는 장기 시장금리의 하락세 역시 한은 자료가 적시하는 그대로다.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6%로 내린 것도 한은이다. 그것도 12조원의 추경이 원만하게 이뤄진다는 전제를 깔았다. 때로는 뒷북보다 선제적 조치의 위험성이 더 크다.
김 총재는 한은법 1조를 상기시켰다. 물가안정이 한은의 설립 목적이라는 것이다. 경제성장도 함께 보겠다는 작년 말의 주장과는 달라졌다. 아쉽게도 물가를 경고하는 설득력 있는 지표는 없다. 한은의 예측 능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은은 지난해부터 연이어 6회에 걸쳐 금리를 동결했다. 지금의 금리를 금융완화적 수준이라고 한다면 작년의 금리운용이 잘못되었다고 먼저 말해야 한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다. 김 총재는 지난해 7월과 10월의 금리인하 효과로 지금 경기가 회복 중이라고 단언했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통화유통속도나 통화승수 등에서 정상으로의 복귀 추세가 관찰되었는지도 의문이다. 한은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독립성이 아니라 무력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확신은 회의(懷疑)를 충분히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 같지가 않다.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신용정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신용정책은 한은이 돈을 찍어 개별 은행에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역시 개별 상업은행의 일반적 자금수위를 높여주는 것일 뿐 최종 대출자에게 1 대 1로 매칭되는 그런 선별적 대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그 어떤 중앙은행도 총액한도대출 같은 직접대출 제도를 운영하지는 않는다. 중소기업이라는 특정 타깃을 선정해 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정부의 과업이지 한은의 과업이 아니다. 바다에 물이 들어오면 배도 뜨고 쓰레기도 뜬다. 그게 통화정책이다. 바로 그 때문에 무차별적이고, 무차별적이기 때문에 냉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은은 바로 그 힘으로 정치와 정부로부터 독립한다. 차별적, 선택적 지원은 정부의 과업이다. 김 총재는 금리인하를 거부하는 대신 ‘창조기업’에 3조원을 더 지원한다고 말할 때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을 것이다. 확신이 아니라면 언어는 꼬이고 복잡해진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