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시장 패닉] 金 대폭락…中 저성장·엔저 쇼크 "원자재 장기호황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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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큰손' 폴슨·아인혼 이틀새 7200억원 날려국제 금값이 33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날보다 트로이온스(31.1g)당 140.40달러(9.4%) 떨어진 1360.60달러에 거래됐다. 이날 금값 하락폭은 1980년 3월17일(11%) 이후 30여년 만에 최대 규모다.
무디스, 中 신용 전망 낮춰…한은, 2년새 평가손 9100억
금 선물은 전 거래일인 지난 12일에도 63.50달러(4.1%) 떨어졌다. 이틀 새 200달러 이상 하락한 것이다.1974년 미국에서 금 선물이 거래되기 시작한 이후 금값이 이틀 동안 200달러 이상 하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씨티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는 원자재 장기 호황에 죽음의 종소리가 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요인은 중국 경제의 성장 부진이다.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이 7.7%에 불과, 중국 경제가 저성장 궤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이 빠르게 금을 팔아치웠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중국의 신용등급(Aa3) 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낮췄다. 닉 브라운 영국 나티시스은행 원자재팀장은 “금속 소비량이 세계 40%에 달하는 중국의 수요가 약해지는 것은 원자재시장 전반에 좋지 않은 신호”라고 말했다. 시진핑의 부패와의 전쟁도 중국의 금 수요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줬다.
일본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따른 달러 강세와 키프로스의 금 대량 매도 소식, 인도의 금 수입관세 인상 등도 금값을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다. 일본은행(BOJ)의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한 엔저 정책도 상대적 달러 강세를 이끌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의 매력을 떨어뜨렸다. 금값 폭락의 방아쇠를 당긴 또 하나의 요인은 키프로스 구제금융이다. 10일 키프로스 정부가 10t가량의 금을 팔아 재정 확보에 나선다는 발표가 나오자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도 금 매도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졌다.
여기에 세계 금 수요의 30%를 차지하는 인도 정부도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우려해 금 수입 관세를 최근 14%에서 18%로 올렸다.
다른 원자재들도 일제히 폭락했다. 은값은 하루 만에 11%(2.97달러) 빠지면서 온스당 23.36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최근 2년 새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백금은 4.3%, 구리 3.5%, 팔라듐은 7.8% 빠졌고, 유가 역시 배럴당 3% 가까이 급락하며 연중 최저치에 근접했다. 금 투자 전문가로 알려진 억만장자들도 금값 폭락으로 체면을 구겼다.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존 폴슨과 헤지펀드 거물 데이비드 아인혼은 금값 폭락으로 2거래일 만에 6억4000만달러(약 7200억원)를 잃었다고 포브스가 보도했다.
아인혼은 자신이 운용하는 그린라이트펀드 투자자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금값이 하락하면서 난관을 만났다”고 썼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에 따른 평가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말 현재 104.4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에 14.4t의 금을 보유해 오다 2011년 7월부터 5차례에 걸쳐 90t을 더 사들였다. 기존 보유분은 평균 매입단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추가로 매입한 90t의 평균 매입단가는 온스당 1627.75달러다. 추가로 사들인 90t의 평가손실은 8억1300만달러(약 9110억원)로 늘어났다.금값 하락은 국내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금과 관련 있는 고려아연(-4.91%)과 대우인터내셔널(-8.98%) LG상사(-7.18%) 등 원자재 관련주가 크게 하락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