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외면하는 은행 서민대출 상품…금리 연 10%대지만 대부분 은행 대출실적 10억도 안돼

리스크 부담에 판매 꺼리고 대출한도 너무 적어
은행들이 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내놓은 서민대출상품이 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대출한도를 작게 하거나 대출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등 애초부터 상품을 ‘생색내기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작 수억원인 서민대출 실적 18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은 작년 금리가 연 10%대인 서민대출상품을 일제히 내놓았다. 연 20% 이상 고금리로 2금융권 대출을 이용하는 저신용·저소득층의 대출금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 상품의 실적은 저조하기 짝이 없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7월 내놓은 ‘행복드림론Ⅱ’는 출시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대출 잔액이 4억여원에 불과하다. 이 상품은 신용등급이 6~9등급인 사람 중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인 저신용·저소득자를 위한 상품이다. 연 20~30%대의 고금리를 물며 2금융권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금리를 연 15%로 낮췄다.

우리·신한·하나 등 다른 은행들이 선보인 서민 대상 대출상품들도 실적이 저조하긴 마찬가지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지난해 9월 선보인 ‘희망드림대출’과 ‘이자다이어트론’은 대출 잔액이 각각 3억원, 7억원에 불과하다. 신한은행의 ‘새희망드림대출’은 이보다 많지만 39억원에 그쳤다. ‘희망드림대출’은 은행 대출 한도가 부족해 2금융권으로 밀린 고객들을 위해 대출 가능 신용등급을 7등급까지 낮추고, 연 8~12%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처음부터 대출 의지가 없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중금리 대출 상품의 실적이 저조한 것은 출발부터 ‘생색내기용’ 상품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6월 각 은행에 “대출 금리가 고르게 형성되지 않아 ‘금리 단층’ 현상이 생기고 있다”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연 10%대 중금리 상품을 출시하라”고 주문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출시한 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중금리 대출 상품이 2금융권보다 금리는 낮지만 연 10%대의 두 자릿수 금리를 매기기 때문에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 한도를 너무 작게 잡아 이용자들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은행의 ‘희망드림대출’은 대출 한도가 최대 300만원에 불과하다. 국민·신한·하나은행의 서민대출 한도는 각각 최대 500만원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2금융권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저신용ㆍ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들인 만큼 리스크가 크다”며 “지난해부터 기존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 등의 연체율이 올라가는 것을 고려하면 중금리 상품의 대출 한도를 늘리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 10%대 대출 상품이 그동안 은행 고객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대출 대상으로 삼으면서 ‘돈을 잘 갚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리스크 평가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채권 회수 여력만 걱정하기보다는 저신용·저소득자들을 좀 더 세분화해 여신 심사 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