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죽어라 회사 키워 중견기업 되니 대출 끊겨…눈물 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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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회계사로 일하다 큰 형 회사 도우려 귀국
車 부품사 인수로 사업 시작…현대·기아차에 차체 납품
14년 만에 매출 8900억 그룹 키워
매년 지구 8바퀴 거리 출장…피로·포기 모르는 '에너자이저'
강 회장이 경영하는 신영그룹의 내수 비중은 89%다. 현대·기아차에 측면 차체와 후륜패널 같은 차체를 납품하고 있다. 수출은 1000억원 정도다. 차체를 찍어내는 금형을 제작해 BMW 폭스바겐 포드 GM 같은 해외 자동차 회사에 수출하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올라간 뒤 힘들었다고 들었다. “그 얘기는 밤을 새워도 다 못한다. 1999년에 다 쓰러져가는 기업을 인수해 죽어라 키웠더니 2008년 대기업으로 분류됐다. 그때만 해도 산업법에는 중소기업과 대기업만 있지 중견기업이라는 게 없었다. 대기업이 되니 갑자기 금융권에서 목을 조르기 시작하더라. 그해가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난 이듬해다. 당시 울산공장에 ‘핫프레스포밍’(철을 뜨겁게 달궜다가 급히 식혀 형상을 만드는 공법) 장비를 설치하려 했다. 단단하고 가벼운 부품을 만들 수 있는 장비였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이었다. 은행에서 200억원을 대출받기로 했다. 발주도 하고 계약금도 줬다. 그런데 갑자기 K은행에서 대출을 못 해주겠다고 하더라. 그때 그 은행 여신본부장이 대학 친구였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 80% 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중소기업 의무대출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우리에게 200억원을 빌려주면 중소기업에 800억원을 대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중기 대출을 그만큼 늘릴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우리한테도 대출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회사가 흔들렸다. 피눈물이 났다. 세 번을 울었는데 한 번은 정말 살인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더라. 결국 별짓 다해서 3개월 만에 해결했다. 이런 제도는 빨리 고쳐져야 한다.” ▷은행에 많이 실망했겠다.
“그렇다. 기업이 어려울 때 금융이 우산을 뺏어버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외국은 어떤가. 요즈마펀드(이스라엘 벤처펀드로 자산이 4조원에 달한다)를 봐라. 지난달 어느 행사장에서 이갈 에글리히 요즈마펀드 회장을 직접 만나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성공했냐’고 했더니 답이 참 단순하더라.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투자 심사를 하고, 투자 후에는 해외 판매 같은 사후관리까지 서비스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금융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요즈마펀드 같은 게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부품사업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자동차의 ‘자’자도 몰랐다. 그런데 1998년 현대와 기아차가 합쳐지는 것을 보며 혼자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자동차산업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거 아닌가. 무조건 자동차 부품회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회사를 바로 설립했나.
“아니다. 마침 그때 경북 영천에 부도가 난 차 껍데기 회사(신아금속)가 경매로 나왔다. 그걸 낙찰받은 게 1999년 12월이었다. 인수 당시 매출이 190억원, 종업원이 170명을 조금 넘었다. 그걸 14년 만에 조 단위 매출에 육박하는 회사로 키웠으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그가 너털웃음과 함께 “이 대목에서 한 잔”하며 술잔을 돌릴 때 이 식당의 자랑인 ‘흑임자더덕구이’(더덕을 구워 꿀 소스를 바른 다음에 흑임자 가루를 묻힌 요리)가 나왔다.
언뜻 봐서 사업가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는 원래 외교관을 꿈꿨다고 했다. 그러나 선친(강학용 전 진주교육감)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74학번인 강 회장은 대학생활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과 친구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장하성 고려대 교수, 설훈 민주통합당 의원 등과 어울렸다. 강 회장이 기업 경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군 제대 후 소일하던 그에게 대학 친구가 자기 회사에 들어와 경영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회사에 들어간 뒤 유학길에 올랐고,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난 다음 미국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어떻게 귀국하게 됐나.
“조선 부품업체를 하던 큰 형님이 불렀다. 당시 영어로 해외 영업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1988년 한국에 오면서 집사람에게 딱 2년 반만 일하고 다시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25년을 넘었다. 본의 아니게 집사람에게 ‘사기’를 친 셈이다. (웃음)”
강 회장은 “사람은 항상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사업을 하게 된 것도, 사업 중에서도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게 된 것도 다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얘기 도중 테이블 위로 예당의 별미인 가지새우살튀김과 마말이밥이 나왔다. 가지새우살튀김은 가지를 반으로 쪼갠 뒤 그 가운데 새우살 완자를 넣어 튀겨 맛이 담백했다.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마말이밥은 마를 구워 끈적임을 뺀 후 찰밥을 둘러말아 향긋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주제가 노조와 경제민주화 쪽으로 넘어가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조 문제를 자주 얘기했는데.
“전북 전주에 있는 기아차 상용차공장 증설에 최근 2800억원이 투입됐다. 상용차 생산량을 연간 5만대에서 6만2000대로 늘리기 위해서다. 인력도 더 투입돼야 하는데, 노조가 반대해 2년간 라인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 증원 인력에 지급할 돈을 자기들에게 나눠 달라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기아차 증설에 맞춰 협력사들도 부품 라인을 증설했다. 하지만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협력업체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무슨 죄인가.”
▷일감 몰아주기 과세 입법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내가 3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가 있다. 그 회사와의 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봐서 영업이익에 과세하겠다는 거다. 나는 그 계열사를 떼어내면 매년 32억원의 적자를 안 봐도 된다. 그러나 499명의 직원들은 어쩌란 말이냐. 이게 경제민주화의 목표이고 상생을 말하는 것인가. ”
소주가 한 순배 돌아가고 골프 얘기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옮아갔다. 그는 “지난해 국내 한 골프장에서 파4홀을 1온 1퍼트로 ‘이글’을 했다”고 했다. 그는 골프를 매우 좋아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은 새로 맡은 중견기업연합회장 일 때문에 라운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회장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현재 회원사가 386개다. 이를 연말까지 1004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회원사가 이 정도는 돼야 정책 당국자들도 우리 목소리에 신경을 쓴다. 중견련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볼 생각이다. 회장으로 취임한 뒤 맨 먼저 한 것이 변대규 휴맥스 회장을 찾아간 일이다. 회원으로 가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소기업청은 중견련 회원사를 2017년까지 4000개로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더 빨리,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 독일은 중견기업이 전체의 12%로 48만개다. 이 중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만 1600개다. 한국은 중견기업 숫자가 전체의 0.04%, 1422개에 불과하다. ”
마지막으로 매생이두부와 채소구이, 대파채회무침 등이 나왔다. 강 회장이 어떤 도전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항상 꿈을 꾸고 있다. 새로운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에 진출해 보고 싶고, 지금은 부품을 하지만 직접 완성차도 만들어 보고도 싶고.”
강 회장은 “술만 좀 줄이면 앞으로 십수년 후에 그런 날을 볼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일어섰다.
세월이 흘러 주변이 빌라촌으로 바뀌면서 9년 전 주택가를 나온 이 식당은 강남구 신사동 도산사거리 근처 현대식 건물에 들어갔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즐겨 찾았다. 4층짜리 건물로 옮기면서 내 집 같은 아늑한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그 맛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식은 ‘서울식’에 맞추고 있다. 손님치레가 많은 군 장성 집안으로 시집온 주인이 수십년간 익혀온 것이라고 한다. 이날 강 회장이 선택한 것은 저녁 코스요리 ‘추억의 밥상’이다. 나오는 음식은 화려하다. 보리매생이죽으로 시작해 유채샐러드, 봄동전, 도미회무침, 매생이두부, 과메기쌈, 더덕흑임자구이 등 쉴새 없이 한상 가득 차려진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8-20. 저녁코스 황제의 밥상 8만원, 황후의 밥상 10만원, 추억의 밥상 8만원, 점심코스는 3만원대부터(부가세 별도).
박수진/김정은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