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vs 아들…세대간 일자리 전쟁 현실화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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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정년연장법 소위 통과 - 60세 정년연장 의무화 후폭풍대기업 S사에 다니는 김모 부장은 올해 만 52세(1961년생)다. 정년을 만 55세로 정한 회사 규정상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는 한 3년 뒤엔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물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60세 정년 연장 의무화 방안이 도입되면 5년을 추가로 더 다닐 수 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아들의 취업 걱정 때문이다. 김 부장 아들은 올해 25세로 3년 뒤 구직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년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한다면 신규 인력 채용을 그만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김 부장이 속한 회사 입장이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는 게 김 부장의 고민이다.
임금조정 없을땐 청년층 절반만 채용
中企도 인력난·인건비 부담 이중고
◆부자(父子) 간 일자리 전쟁 터지나 경제계는 정년 연장 의무화가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한다. ‘청년 구직자 대 고령 근로자’ ‘아버지 대 아들’의 일자리 전쟁이 현실화될 것이란 얘기다. 고용 통계가 그 근거다. 고용노동부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50~59세 근로자는 126만6579명이다. 작년 기준 국내 기업의 평균 정년이 58.4세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중 55세 이상이 3년 내 정년을 맞는다. 그런데 60세 정년 연장이 의무화되면 58~59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공기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만 59세 정년인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정년 연장으로 2016년 62명, 2017년 66명이 혜택을 본다.
문제는 원래 비어야 할 일자리가 정년 연장으로 유지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청년층에 미친다는 점이다. 지난달 기준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369만명이다. 청년 실업자는 148만명에 달한다. 저출산으로 청년층 인구가 감소한다고는 하지만 3~5년간은 청년 취업자와 실업자가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정년 연장이 의무화될 경우 청년 취업자 수는 줄어들고 실업자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 연구위원은 “일자리 총량이 일정하다면 정년을 연장했을 때 세대 간 일자리 경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성장률이 낮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선 그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50대 근로자가 20대 근로자보다 임금이 1.89배 높다”며 “임금 조정이 없을 경우 기업들은 청년층 두 명 뽑을 것을 한 명만 뽑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 “신규 채용 줄일 수밖에”
3년 뒤 정년 연장 의무화 대상이 되는 대기업들의 고민도 커졌다. 대기업 중에서 60세 정년을 시행하는 곳은 SK이노베이션, 현대중공업, GS칼텍스 등 극소수다. 대다수 기업은 55~58세가 정년이다. 당장 삼성그룹 계열사들도 현행 만 55세 정년을 3년 뒤부터 60세로 조정해야 한다. LG전자도 만 58세인 정년을 2년 더 연장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이 매년 700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 것은 그만큼 정년에 다다른 인원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라며 “3년 뒤부터 정년을 의무적으로 늘려야 한다면 누가 신규 인력을 채용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고민은 더 있다. 정년 연장 법안이 통과되면 시행시기는 3년 뒤지만 노조의 정년 재협상 요구가 빗발칠 것이란 점이다.
◆중소기업도 ‘부정적’
정년 연장에 부정적인 건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고용부 조사(2011년)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 가운데 정년제도를 운영 중인 곳은 20%밖에 안 된다. 정년 연장이 의무화되면 8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과 식당 등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중소기업은 청년 인력의 높은 이직률로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관련 법이 최종 통과되면 중소기업 인력 운용만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이태명/전예진/조미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