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산화수소가 대량살상 무기 연료라니…이란에 표백용 수출했다 항소심서 누명 벗은 무역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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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세관에 발목 잡혀 피소…1심선 대외무역법 위반 판결종이 표백제 등으로 쓰이는 과산화수소를 대량파괴 무기의 연료로 오인받아 수출에 발목이 잡힌 무역업자가 1년여 법정투쟁 끝에 항소심에서 누명을 벗었다.
2천만弗탑 업체가 법정관리
무역업체 C사 대표인 김모씨(47)는 2011년 7월21일 과산화수소 302(23만달러어치)을 이란의 거래처 M사에 보내려고 수출신고를 했다가 광양세관에서 가로막혔다. 물건을 수입하기로 한 제지 생산업체를 당시 지식경제부가 ‘우려 거래자’로 고시했기 때문이다. 우려거래자는 수입자나 최종 사용자가 해당 물품을 대량파괴 무기 제조·개발 용도로 쓸 우려가 있어 수출할 때 ‘전략물자’에 준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을 말한다. 우려거래자에게 수출하려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허가(상황허가)를 받아야 한다. 김 대표는 ‘농도 60%의 과산화수소는 이란 교역금지 품목에 해당하지 않고 M사는 제재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란 교역 및 투자 비금지확인서를 전략물자관리원장으로부터 발급받은 상태였다. 김 대표는 “M사와는 2008년부터 거래해왔지만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처음 들었고, 대량 파괴무기로 전용될 우려가 없다면 우려거래자와의 거래라도 허가는 불필요하지 않느냐”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부로부터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지를 받은 날은 선적 전날이었다. 물건은 보세창고에 쌓여 있는데 허가를 받으려면 앞으로 한 달 이상 더 걸릴 판이었다. 계약 파기로 입게 될 손해를 우려한 김 대표는 수입업체 이름을 M사의 자회사인 A사로 바꿔 수출선박에 실어 보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작년 5월 이란의 수입업체 M사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에 따라 우려거래자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앞서 같은 해 2월 대외무역법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김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판사 하현국)는 “과산화수소가 대외무역법상 대량파괴 무기 등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원심과 달리 무죄로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 대표가 수출한 과산화수소는 농도가 60%로 종이·펄프·섬유 등을 표백하는 데 주로 쓰인다. 반면 대량파괴 무기 등의 연료로 사용되는 과산화수소는 90% 이상 농축돼야 한다. 재판부는 수입 업체 이름을 바꿔 수출신고한 혐의만 유죄 판단을 유지해 벌금을 150만원으로 낮췄다.
재판이 1년 이상 이어지면서 C사는 과산화수소 제공 업체인 OCI와의 거래가 끊겼다. 이란과의 수출에 힘입어 2007년 2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탄탄한 회사였지만 지금은 법원의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 있다. 게다가 이란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법원은 이 회사가 기업가치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스크린골프 사업으로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김 대표를 변호한 법무법인 남산의 김형진 변호사는 “관세당국이나 1심 법원 입장에서는 나름의 주어진 역할을 한 것이겠지만 중소기업으로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