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물거품된 40년 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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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연장, 별 의미없는 미봉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은 결국 실패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뻔한 결론이다.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라는 가장 민감한 의제의 칼자루는 미국이 쥐었고 한국은 밀어붙일 카드가 없었다. 북한의 거듭된 핵위협까지 발목을 잡았으니 협상은 애초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재처리 족쇄 풀릴 기약없는데 폐기물 감당못해 원전중단 위기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현행 협정의 2년 연장은 골칫거리를 일단 덮은 미봉(彌縫)일 뿐이다. 연장기간 동안 협상의 속도를 높인다고 하지만 미국은 어떤 희망적 시그널도 주지 않았다. 협상의 동력이 강해질 새로운 모멘텀이 생긴다거나 여건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2년 뒤면 미국 오바마나 우리 박근혜 대통령 모두 힘이 빠지기 시작할 때다. 장애물만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은 박 대통령의 최우선적인 한·미외교 현안이었다. 박 대통령이 불평등한 원자력협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헛심만 쓰고 동맹외교의 첫 시험대부터 깊은 상처를 입은 꼴이다. 게다가 동일 사안을 놓고 미국과 우리가 정반대의 관점에서 평행선으로 접근하고 있는 간극(間隙)만 확인됐다. 우리는 에너지 안보와 자원 재활용, 평화적 핵기술 개발 차원에서 농축과 재처리를 요구해왔지만 미국은 핵 비확산이라는 전략적 시각만 고집한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핵개발 논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농축과 재처리는 우리 원자력 기술의 최대 걸림돌이자 지난 40년의 숙원(宿願)이다. 우리는 1969년 국산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 계획을 세웠고 1972년 프랑스와의 원자력기술협력협정 체결을 통한 농축 및 재처리 연구시설 도입과 함께 기술개발이 착수될 단계까지 갔다. 그러나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핵확산 금지를 내세운 미국의 압력으로 무산됐다. 그리고 미국은 1973년 우리와 맺은 원자력협정의 ‘핵물질을 재처리하거나, 형태 및 내용을 변형할 경우 양국이 공동 결정토록 한다’는 조항으로 우리의 독자적인 농축과 재처리를 원천 봉쇄해왔다.
국내에 원자력발전소 하나 없던 시절 채워진 족쇄를, 23기의 원전이 전력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면서 세계 5위 원전 대국으로 발돋움한 지금까지 협정문의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한 채 40년 동안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상황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다. 원전 강국 가운데 우리만 농축과 재처리 권한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핵무기 기득권 국가인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은 논외로 쳐도 핵 비확산을 촉발했던 인도와 전범(戰犯)국가 일본이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얻어냈고, 독일 네덜란드 브라질 등도 핵연료 생산을 위한 농축에 제한이 없다. 문제는 발등의 불인 핵폐기물의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원전에서는 원자로에서 태우고 난 핵연료봉이 매년 700t씩 쏟아져 나온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지만 천연 우라늄보다 훨씬 순도가 높은 우라늄235와 핵분열 물질인 플루토늄239를 포함한다. 이를 녹이고 분리·정제하면 곧바로 발전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고 폐기물의 양을 2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못하고 있으니 쓰레기로 월성과 울진, 고리, 영광의 원전 수조(水槽)에 임시로 쌓아두고 있다. 그 양이 이미 1만t을 넘어 보관 가능한 용량의 70%를 넘었다. 당장 2016년 고리원전부터 2021년 울진까지 포화상태에 이른다. 중간저장시설이 있다면 몇십년 시간을 벌겠지만, 별 위험도 없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는 데만 극심한 지역주민 반발과 국론 분열로 20년이 걸렸으니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은 말도 꺼내지 못한다.
숨통은 죄어오는데 심각한 딜레마다. 더 이상 핵폐기물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원전을 멈춰 세워야 하는 최악의 위기에 몰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생존의 문제이자 나라경제의 사활적 과제로서 재처리는 그렇게 절박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해법이 없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 실패는 협정기한 연장이라는 편법의 선례를 만들지 않고 농축과 재처리의 에너지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다시 찾기 힘든 기회를 놓치고 만 결과가 될 수 있다. 답답하고 서글프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