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농수산물마저…바나나·소고기·동태값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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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과일 등 소비 늘고 수산물은 어획량 줄어…태풍 등 자연재해도 한 몫미국 오렌지, 칠레 포도, 호주 갈비, 중국 낙지…. 수입 농수축산물은 최근 몇 년간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효자였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잇단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싼값에 즐길 수 있었다. 물량 공급도 안정적이어서 대형마트에선 인기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중국 낙지 47% 상승…필리핀 바나나 36% 올라
환율하락·FTA효과 사라져
그랬던 수입 농축수산물이 요즘은 식탁물가를 들썩이게 만드는 ‘요주의 상품’으로 돌변했다. 주요 품목의 국제 시세가 크게 뛰면서 한국의 밥상 물가까지 끌어올리고 있어서다. 일부 품목은 기상 이변 같은 단기적 요인이 아니라 중국·미국 등의 수요가 급증하는 구조적 현상 때문에 값이 급등하고 있다. ‘수입 먹거리발’ 식탁물가 상승이 가시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美·中 수요 급증이 값 끌어올려
25일 롯데마트가 주요 수입 신선식품의 소비자 가격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이맘때보다 적게는 10% 안팎, 많게는 50% 이상 상승했다. 필리핀 바나나(100g)가 1년 전 248원에서 전날 338원으로 36.3%, 러시아 동태(1마리)는 1600원에서 2480원으로 55% 비싸졌다. 미국 오렌지, 칠레 청포도, 호주 소고기 목살(척아이롤), 러시아 킹크랩 등도 불과 1년 새 10~20% 넘게 값이 뛰었다.
이 가운데 미국 오렌지와 칠레 포도는 북미 지역의 소비량이 크게 늘었고, 그 결과 아시아 지역으로 반입되는 물량이 줄었다. 미국 내수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과일 수요가 살아났다는 분석이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칠레의 포도 생산량은 전년 대비 5% 감소했지만 미국으로의 수출량은 10% 늘었다. 아몬드, 호두 등 견과류는 중국 수요가 늘면서 국제시세가 들썩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호두협회에 따르면 작년 9~12월 중국으로 수출한 호두 물량이 1년 전보다 54% 늘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호두 생산자들은 아시아 수출가격을 최근 20%가량 상향 조정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견과류 가격을 지금까진 동결했지만 조만간 오를 것”이라며 “중국 롯데마트 매장에서도 올 1분기 견과류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호주 소고기 값이 오른 것도 같은 원인에서다. 호주 농수산부에 따르면 중국의 호주 소고기 수입량은 작년 1~2월 779에서 올 1~2월 1만6300으로 22배 폭증, 한국의 호주 소고기 수입량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환율 하락·FTA 효과까지 상쇄
수산물은 중국 수요가 늘어난 데다 동남아·러시아 일대 어황이 좋지 않은 영향까지 겹쳐 가격 상승폭이 더 컸다. 롯데마트에서 동남아산 냉동 새우는 2009년 20마리 3800원이던 것이 요즘은 5800원으로 뛰었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낙지도 중국 어획량이 줄면서 1년 새 ㎏당 1만7000원에서 2만5000원으로 47% 급등했다. 러시아 킹크랩도 같은 이유로 대형마트 가격이 20% 뛰었다.
지난해 수입과일 열풍을 주도했던 키위, 파인애플, 바나나 등은 최대 생산국의 기상 이변으로 값이 뛰었다. 대표적 열대과일 생산국인 필리핀은 작년 12월 태풍 피해로 많은 농장이 파괴된 상태다. 원상회복까진 최소 10개월이 소요돼 국내 가격도 고공행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다음달 판매에 들어갈 뉴질랜드 키위도 현지 작황이 좋지 않다”며 “뉴질랜드 키위가 올해는 칠레산보다 두 배 이상 비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구매력이 큰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도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정재우 롯데마트 마케팅팀장은 “해외 수요 증가로 국제시세가 크게 오르는 탓에 국내 환율 하락과 FTA 관세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도 “일부 수입 신선식품은 저장시설에 비축하고, 해외 직구매도 확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비책이 되긴 어렵다”며 “동해에 한류성 어종이 사라지면서 국산 수산물은 사실상 씨가 말라가고 있어 국제시세 변화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품목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