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민주, 아직도 安의 종속변수?
입력
수정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지난해 말 대선 패배 후 민주통합당은 변화와 혁신, 뼈를 깎는 자성을 외쳤다.
새 정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반성이 의원들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선이 끝나고 국회의원 등 200여명은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국민을 향해 세 번이나 큰절을 하며 “민주당을 살려달라”고 외쳤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대선평가위원회를 구성, 패배 원인 분석에 나섰다. 평가위는 두 달간의 분석 작업 끝에 대선 패배 요인으로 민생을 외면한 이념논쟁, 계파 갈등, 대결정치 주력 등을 꼽은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당의 발전방향으로 계파 헤게모니 청산, 민생정치 실현 등을 제시했다.반성문 또 썼지만 폐기될 운명
보고서 전반에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뛰어넘는 비전과 수권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일각에선 제1야당의 자생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안철수 후보(현 무소속 국회의원)의 지원에 기대는 ‘안철수 바라기’ 현상을 만들어 낸 당시 지도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실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자서전 이름(운명)에 빗대 민주당의 운명은 안철수에 달렸다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민주당은 쇄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결과는 지난 ‘4·24 재·보선’ 참패. 국회의원 두 곳과 기초단체장 두 곳에 후보를 냈지만 한 곳도 건지지 못했다. 불임 정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박용진 대변인조차 “민주당을 향한 차갑고 무거운 민심의 바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민주당은 또 반성문을 쓰고 더 혁신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실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당장 내달 4일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싸움이 한창이다. 당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기보다는 친노무현계를 중심으로 한 범주류와 비주류가 대선 패배 책임론을 놓고 연일 치고받고 있다. 당 강령 개정과 관련, ‘우향우’ 방안을 놓고도 내홍이 깊다. 대선 반성문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옷 바꿔 입는다고 달라지나
안 의원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안 의원이 출마한 서울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안 의원의 민주당 입당을 유인하기 위한 ‘안철수 바라기’의 일종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민주당과의 관계에 대해 “새 정치를 가지고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할 때 최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쟁’이란 표현을 쓴 대목이 주목된다. 입당을 기대했던 민주당의 바람과 거리가 있다. 민주당으로선 자칫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러자 민주당 내에선 견제성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한길 의원은 “안 의원이 독자세력화를 추구한다면 새누리당으로부터 표창장 받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결국 300(국회의원 정수)분의 1로 제2의 문국현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민병두 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안 의원은 새 정치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하고, 민주당은 민생정치가 무엇인지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다. 이번에도 지난해 대선 때 불었던 ‘안철수 현상’을 뛰어넘지 못하면 당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옷만 바꿔 입는다고 실체가 달라질까. 절체절명의 순간인데도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여전히 안철수 ‘종속변수’에 머물지 여부는 그들 몫이다.
홍영식 정치부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