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초능력자가 펼치는 新삼국지, 신경진 씨 장편소설 '중화의 꽃' 출간

소설가 신경진 씨(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중화의 꽃》(문이당)은 21세기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다. 카지노를 통해 미래의 불확정성을 풀어낸 작품 ‘슬롯’으로 제3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던 작가가 이번엔 한·중·일의 초능력자들이 펼치는 21세기 신(新)삼국지를 들고 나왔다.

1993년 나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한·일 관계와 핵무기를 다룬 데 비해 이 소설은 좀 더 복잡해진 한·중·일 3국의 관계와 초능력이라는 다소 ‘판타지한 무기’를 다루는 것이 차이다. 하지만 초능력은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장치일 뿐, 소설은 황당하거나 공상적이지 않다. 작가는 깔끔한 문장과 현실성 있는 국제관계에 기반을 둔 촘촘한 구성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긴장하게 만든다. 소설은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국인 초능력자 세 명이 한국에 입국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의 리더는 ‘중화(中華)로써 오랑캐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어도, 오랑캐가 중화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는 말을 신봉하는 중화주의자인 위제. 이들은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고위급 망명자인 김평남을 암살하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열쇠인 ‘중화의 꽃’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일왕을 숭배하는 일본 극우 비밀결사체의 초능력자 요이치도 ‘중화의 꽃’을 찾고 있는 상황. 뒤늦게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한국의 국정원 요원 차지수 또한 이들을 뒤쫓으면서 3국 간 각축이 벌어진다.

한편 제주공항 관제사로 근무 중인 이영원은 업무를 끝내고 주차장에서 휴가를 구상하던 중 한 남자의 테러에 휘말린다. 초인적인 관제능력으로 여객기들을 비상착륙시키며 대형 참사를 막아낸 이영원은 TV 뉴스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중국과 일본의 초능력자들은 그가 ‘중화의 꽃’임을 알아보고 제주도로 향한다. 가까스로 이영원을 구해 낸 차지수는 그와 함께 ‘중화의 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상하이로 향한다.

신씨는 ‘작가의 말’에 “동아시아 지역이 21세기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일이 경쟁하는 국면을 초능력자들의 갈등과 투쟁으로 축소해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극단적 국수주의를 배격한다. 작가는 3국 간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시각이 아닌, 극단주의자를 몰아내고 합리적 세력이 협력하는 구도를 그린다. 보다 진화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인 셈이다. “진짜 초능력자들은 염력을 사용하고 미래를 보는 이들이 아니라, 인류를 파멸로 이끌 군대를 움직이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강력한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일지도 몰라요. 제가 상상했던 세계와 독자가 그려 낸 세계가 일치하는 결말을 꿈꿉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