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꿀벌 실종 사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꿀벌의 뒷다리에는 특이한 주머니가 달려 있다. 허벅지 바깥쪽에 붙은 이 황금색 주머니는 식물의 꽃가루를 모아서 운반하는 ‘꽃가루통’이다. 꿀벌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일벌들은 죽을 때까지 꽃가루를 모아서 집으로 가져오는 일을 한다.

이들은 건축과 육아 등 살림도 맡는다. 여왕벌이 하루에 낳는 2000여개의 알을 다 먹여살린다. 수명은 길지 않다. 가을에 태어나면 이듬해 봄까지, 여름에 나면 50일밖에 못 산다. 이 짧은 일생 동안 하는 일은 엄청나다. 인류가 기르는 식용작물의 63%가 꽃가루를 묻혀줘야 열매를 맺는데 이 일을 대부분 꿀벌이 담당한다. 그것도 사회적 협업을 통해서 한다. 동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는 꿀벌이 꽃이나 집을 찾는 과정에서 8자 모양의 ‘엉덩이 춤’을 주는 것을 밝혀내 노벨상을 받았다. 미국 생물학자 토머스 D 실러는 벌들의 집단지능 선택을 연구해 ‘꿀벌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썼다. 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들은 인류에게도 큰 선물을 제공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작물 중 71가지가 벌의 꽃가루받이 덕분에 열매나 씨를 생산한다. 우리나라에서 과수와 채소작물 분야에 꿀벌이 기여하는 가치가 연 6조원에 이르고 세계적으로는 224조원(2030억달러)에 달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벌들의 떼죽음이 잦아졌다. 2006~2007년 북미와 유럽에서 처음 집단 실종 사건이 터졌고 200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도 230여만 마리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문경과 칠곡에서 집단 폐사한 적이 있다. 원인은 뭘까. 바이러스와 농약, 유전자 변형작물 때문이라는 설과 전자파 탓에 방향감각을 잃은 결과라는 설 등이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유럽연합은 살충제를 범인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래서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를 2년간 사용 금지하기로 했다. 환경 문제와 연계시키는 나라도 있다. 어떻든 모두가 인간에 의한 생태파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이 키우는 꿀벌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강한 생존력을 갖춘 야생벌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에도 “야생벌의 역할이 양봉농가의 서양꿀벌과 토종꿀벌보다 두 배나 크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논문이 실렸다. 예를 들면 농경지 주변에 여러 종류의 꽃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보존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양봉농가의 꿀벌뿐만 아니라 야생벌의 개체 수가 늘어날 수 있다니, 이참에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