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한토신 지분 매각 '골치 아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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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잔금 시한 명시 안해코스닥 기업 한국토지신탁의 대주주 지분매각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최대주주에 버금가는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매각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LH는 서둘러 계약한 탓에 500억원가량을 앉아서 손해 볼 처지가 됐다.
리딩PE서 1년째 돈 못 받아
주가 올라 500억 더 받을 수 있어
"계약 해지가 합리적" 지적도
◆1년째 잔금 728억원 납부 연기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LH는 작년 6월 한토신 지분 31.29%(7900만주)를 809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도 1년 가까이 잔금 728억원을 못 받고 있다. 매수자 리딩밸류펀드2호가 계약금 80억원만 지급한 채 잔금 납부를 미뤄서다.
이 펀드는 당초 디스플레이 소재기업 SSCP를 투자자(LP)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SSCP가 부도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SSCP를 대신할 투자자 모집에 나섰으나 자금 동원 능력이 떨어지는 일부 중소기업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펀드운용사(GP) 리딩투자증권까지 내홍에 시달렸다.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고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은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박 부회장이 거느리고 있던 옛 W저축은행(현 예성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뒤 예금보험공사 관리를 받고 있다. 리딩밸류펀드2호는 금융당국 승인도 받아야 한다. 한토신이 금융사여서 지분 10% 이상을 취득하려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 해지가 합리적”
LH로서는 계약을 해지하는 게 합리적이란 지적이 많다. 잔금을 언제 받을지 불투명하고 리딩밸류펀드2호가 새 투자자를 구하면 매수인의 성격이 바뀔 수도 있어서다. 새 투자자가 매수인의 권리를 양도받은 것으로 간주되면 국가계약법상 공매로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LH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매각 대상인 한토신 주가가 오른 것도 변수다. LH는 주당 1025원에 매각하기로 했는데, 현재 주가는 이보다 약 67% 높다. 2010년만 해도 400억원대 적자를 냈지만 2011년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뒤 최근 2년 연속 400억원 넘는 순이익을 거둔 덕분에 주가가 올랐다. 올해는 1분기에만 순이익 18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LH의 한토신 지분가치는 현재 1358억원(9일 종가 1720원 기준)까지 껑충 뛰었다. 계약금으로 받은 80억원을 돌려주고 새 인수자를 물색한다면 500억원 이상 더 받을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경영권이 없는 것을 감안해 기관에 뭉텅이로 지분을 쪼개 팔아도 10% 안팎 할인된 1200억원가량은 받을 수 있다고 증권업계에서는 본다.
◆잔금 지급 시한 명시 안 해 그럼에도 LH가 기존 계약을 끌고 가는 것은 잔금 지급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탓이 크다. LH와 리딩밸류펀드2호가 맺은 계약서에 ‘매수인은 대주주 변경 승인을 받은 뒤 5영업일 이내에 잔금을 치르도록’으로만 돼 있을 뿐 그 기간을 한정하고 있지 않다. 대주주 변경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잔금 납부를 무기한 연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세한의 인수·합병(M&A) 담당 변호사는 “금융사 지분 매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시한을 정해놓지 않고 계약서를 쓴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고 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