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베스트셀러 사재기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베스트셀러 목록을 처음 발표한 곳은 1889년 미국 캔자스시 일간지 캔자스타임스였다. 당시 캔자스 시내 서점에서 팔린 책들을 집계해 공개하는 형식이었다. 6년 뒤인 1895년 미국 문학 저널 ‘북맨’의 편집자 해리 팩은 미국 주요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의 목록을 잡지에 게재했다. 북맨은 이후 ‘퍼블리셔스 위클리’로 이름을 바꾸면서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대표적 잡지가 됐다. 베스트셀러 선정의 권위있는 매체인 뉴욕타임스는 1947년부터 이를 신문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1987년 10월 출판사 설립 자유화 조치 이후 본격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출판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베스트셀러는 판매경쟁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특히 대형서점들이 잇달아 목록을 발표해오고 있다. 최근 인터넷 서점에서 하는 순위매기기도 중요한 잣대가 됐다. 베스트셀러가 물론 반드시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만 하면 책의 판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베스트 서적을 찾아 읽는 사람이 많아서다. 이른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다.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러다 결국 책 사재기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쓰게 된다.

대표적인 책 사재기는 미국에서 1995년 일어난 부정사건이다. 경영컨설턴트인 마이클 트레시와 프레드 위어제마는 저서 ‘시장지도자들의 원리’를 주변 사람을 시켜 미국 곳곳에서 구매토록 했다. 이들이 구입한 책만 1만권에 달했다. 밴드왜건 효과가 나타나 미국 전역에서 무려 23만권이나 팔렸다. 그 결과 15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톱10을 줄곧 지켰다.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의 순위에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출판업자들의 신고로 이들은 영원히 이 책을 팔지 못하게 됐다.

한국 출판계에서도 사재기 의혹은 끊임없이 불거져왔다. 사재기 방법도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하는 형태에서 출판사에서 서점 계좌에 판매대금 입금 후 판매분으로 처리해주는 신종 사재기까지 있다고 한다. 출판사들끼리는 2008년 사재기로 걸린 출판사의 모든 책을 3년간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출판계는 또다시 사재기 문제로 시끄럽다. 소설가 황석영 씨의 작품 등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펴낸 작품들이 사재기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 순위에 현혹되지 않는 독자의 분별이 필요한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