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문제?…시내트라의 '마이 웨이'식 사랑법

예술가의 사랑 (52) 프랭크 시내트라
이 두 사람이 결혼 전에 점집을 방문했다면 아마 뜯어말렸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퉈 도무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친구들도 이 집을 방문했다간 공연히 부부싸움에 휘말려 들기 십상이었다. 차마 듣기 민망할 정도로 험한 육두문자가 오갔다. 이웃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툭하면 창밖으로 옷가지며 책이며 음반이 내던져졌다.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프랭크 시내트라(1915~1998)와 여배우 에바 가드너(1922~1990)는 최악의 부부싸움 커플을 꼽으라면 단연 챔피언 감이다. 두 사람은 화기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잘 흥분하고 한 번 화가 나면 포악해지면서 거침없이 악담을 퍼부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으르렁댄 것은 불안한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다. 시내트라의 아버지는 복서이면서 소방수였다. 어머니는 열성 민주당원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었지만 정작 집에다 불법 낙태시술소를 차리고 영업을 한 이중적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 시내트라에게 심하게 체벌을 가하고 툭하면 욕설을 퍼부었다. 그가 평생 안절부절 정서불안에 시달린 것은 이런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태생의 가드너 역시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부모는 면화 농장의 노동자로 일하며 힘겹게 7남매를 부양했는데 나중에 일자리를 잃게 돼서 아버지는 목공소에 취직했고, 어머니는 기숙사 허드렛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가드너 가족은 뉴햄프셔로 이주, 여인숙을 운영하는데 아버지는 가드너가 15세 때 병으로 사망한다.

다행히 두 사람은 비교적 일찍 재능을 인정받아 시내트라는 가수 겸 배우로, 가드너는 여배우로서 명성을 얻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은 참으로 희극적이다. 1948년 어느 날 밤 시내트라는 할리우드의 선셋 스트립에 있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당시 시내트라는 첫 부인인 낸시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뒀는데 결혼 생활에 한창 싫증이 나 있었다. 그와 함께 창 밖을 내다보던 친구가 말을 꺼냈다. “자네, 저 아래 작은 집에 에바 가드너가 사는 거 알고 있나?” 시내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갈망하던 여인이기 때문이다. 가드너는 영화 ‘살인자’로 스타덤에 올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육감적인 몸매와 빼어난 미모로 남성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했던지 시내트라는 가드너의 집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에바, 에바 가드너. 우리는 당신이 거기 사는 걸 알아요. 안녕 에바.” 설마 그 소리가 그곳까지 들릴까 싶으랴 하면서 두 남자는 배꼽을 뺐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가드너 집 창문이 활짝 열렸다. 두 남자는 쥐구멍을 찾느라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가드너는 히죽거리며 시내트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며칠 후 시내트라는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다시 가드너와 마주쳤고 이를 눈치챈 영화사 스태프들이 가드너와 합석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줬다. 당시 가드너는 겨우 23세였는데 벌써 두 번이나 이혼한 상태였다.

당시 억만장자인 하워드 휴즈가 가드너에게 열심히 구애하고 있었지만 가드너는 시내트라의 애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둘은 법적인 부부가 된다. 훗날 한 기자가 왜 시내트라를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가드너는 그의 소년 같은 미소와 아름다운 목소리에 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니 꿈만 같다”던 가드너와 “음악보다도 가드너를 더 사랑한다”던 시내트라의 사이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가드너가 시내트라를 죄인처럼 몰아세우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고 말했다. 가드너는 자신이나 시내트라나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심 많고, 성마르기 이를 데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의 격랑도 함께 잠자리를 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잦아들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결정적으로 금이 간 이유는 가드너의 자유분방한 사생활 때문이었다. 그는 한 남자에게 만족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가드너 사전에 혼자서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영화 촬영을 위해 집을 비울 때마다 가드너의 외도 사실이 신문 잡지를 도배했다. 질투심이 유난히 많았던 시내트라는 가드너의 파트너에게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둘은 결국 6년 만에 파경을 맞는다. 둘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원했지만 성격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이 웨이’와 ‘해변의 길손’의 가수 시내트라는 그 노래에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감정적 격랑 속에서 살다 간 불운한 인물이었다. 그는 가드너와 이혼 후 미아 패로, 바버라 막스와 결혼했지만 그에게 위안을 준 여인은 없었다. 그렇지만 평생 가드너만큼 사랑한 여인이 없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듯하다. 가드너 역시 만년에 시내트라를 자기 인생의 궁극적 사랑이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문제일까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