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창의적 혁신 기업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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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벤처 M&A 유도방안 등 창조경제 이끌 벤처지원법 마련저성장의 유령이 한국 경제 주변을 맴돌고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돼 온 ‘자본주도 경제성장모형’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창의’와 ‘혁신’으로 재무장하지 않고서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졌다. ‘창조경제’에 대한 논의가 의미있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창의와 혁신을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삼으려면 새로운 DNA로 무장한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15일 정부가 발표한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방안’은 적절한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창업실패=자산' 인식도 확대되야
김도현 < 국민대 경영학·교수 >
지난 몇 년간 시행된 벤처창업 지원정책들은 대부분 일부 제도를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다. 반면 이번에 나온 대안에는 창업-성장-회수로 이어지는 벤처선순환 구조에 맞춰 각 부문에 적절한 지원정책들이 포함돼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벤처기업 창업자와 관련학자들이 끊임없이 제기해 온 요구가 상당부분 반영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코스닥시장 개장 및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된 1990년대 후반 이래 가장 의미 있는 종합대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투자저변 확대를 위한 정책들이다. 그동안 벤처기업 투자가 대부분 벤처캐피털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많이 나타났다. 초기벤처기업 창업자들은 자금을 구하지 못했고, 빚과 보증에 시달렸다. 사업이 실패할 때 재기가 불가능해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벤처캐피털 이외의 민간자본이 활발하게 유입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예가 엔젤투자자 및 창업성공자 등이 투자할 때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 크라우드펀딩을 제도화해 민간투자자들이 벤처투자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2012년 엔젤매칭펀드가 출범한 이후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한 ‘민간자본 투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방안에는 회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도 포함돼 있다. 한국 벤처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는 바로 회수시장이다. 정부는 회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여러가지 대책을 고민해 왔다. 인수합병(M&A) 과정에서의 세금감면, 대기업에 인수된 벤처기업의 계열사 편입 유예, 코넥스 개설 및 코스닥시장 개편 등이 이런 고민을 통해 새롭게 나온 정책들이다. 아쉬운 점과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예컨대 코스닥시장의 상장문턱을 낮추겠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이에 앞서 코넥스 및 코스닥의 역할 구분에 대한 명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또 코넥스의 구체적인 운영방안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M&A하도록 벤처기업(혹은 기술중심기업)을 인수할 때 계열사 편입을 3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유예기간인 3년이 충분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대기업이 벤처기업 M&A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출자총액제와 지주회사법(벤처캐피털 보유 불가) 등과도 연계된 측면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이번 정책발표로 한국의 벤처창업지원정책은 해외 어느 국가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 앞으로는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는 어려워졌다. 오히려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부의 조급증이나, 부처 간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 등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지원정책이 많아지고 자금규모가 커지면서 정책 집행기관인 한국벤처투자 및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자금운용 규모가 커진 만큼 충분한 인력을 보강하는 것은 필수다.
혁신적인 창업시대를 열고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좋은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창업 실패가 인생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에 취업해 평생 안정적으로 사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혁신적인 사고를 가진 창업자들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게만 느껴진다.
김도현 < 국민대 경영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