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콩코르소 델레간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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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기자의 car&talk]매년 5월 봄기운이 완연하게 물든 이탈리아에선 독특한 축제가 열린다. ‘콩코르소 델레간자 빌라 데스테’라는 이름의 클래식카 행사다. 빌라 테스테는 이탈리아 북부 룸바르디주의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코모 호숫가에 지어진 건축물 이름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멋진 건물로 현재 귀빈들이 애용하는 호텔로 운영 중이다. 이 호텔의 멋진 영국풍 정원은 축제기간 동안 클래식카 경연장이 된다. 전세계의 멋진 클래식카들이 모여들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다. 코모 호수는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와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 유명인사의 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아름다운 클래식카들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1929년 코모자동차클럽이 연 ‘코파 도로 빌라 데스테’는 이 행사의 전신이다. 이 행사는 1947년까지 열린 후 명맥이 끊겼다. 이 행사를 되살린 건 BMW다. 1999년 다시 문을 열자 다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카를 타고 모여들었다. BMW의 지원으로 열리지만 차종에 제한은 없다. 부가티와 애스턴마틴,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전세계 다양한 클래식카들이 모인다. BMW도 이 행사만을 위한 콘셉트카를 해마다 내놓으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수천명의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정성스럽게 닦고 조이고 기름친 클래식카들을 감상하고 차주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눈다. 포르쉐의 초기 모델인 ‘356’, 페라리 ‘250 GT’ 등 클래식카들은 레드 카펫 위를 달리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뽐낸다. 행사 기간 가장 인기있는 차들을 선정해 상도 준다. 하지만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참가자들은 행사 자체를 즐긴다. 일부 참석자들은 클래식카와 같은 시대에 유행한 의상을 입기도 한다.
이처럼 클래식카는 단순한 자동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아들은 또 자신의 아들에게 아끼는 차를 물려준다. 이는 자동차의 역사이자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선 클래식카 애호가들이 많아 클래식카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콩코르소 델레간자 외에도 미국의 ‘클래식 우드워드’와 일본의 ‘랠리 닛폰’ 등이 대표적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랠리 닛폰은 클래식카를 타고 교토에서 도쿄로 이어지는 1000㎞의 구간을 4일 동안 달리는 행사다.
값을 따지기 힘든 클래식카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선 개인 차고와 재정적인 여유는 물론 어지간한 자가정비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클래식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애정이다. 클래식카라고 해서 무조건 비싼 건 아니기 때문이다.자동차의 역사가 깊고 자동차 문화가 발달할수록 인기 있는 자동차는 클래식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클래식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오래된 차=고물차’라는 인식이 깊고, ‘클래식카’라고 규정할 만한 차를 찾기 힘든 탓에 이 같은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새 차를 선호하는 자동차 문화에선 꽃피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수입차 점유율이 10%를 넘어서면서 다양한 자동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상륙한 지 110년이 지났고 한국은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다. 이제 남은 건 오래된 자동차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한국의 ‘콩코르소 델레간자 빌라 데스테’를 기다려본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