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더러운 말, 깨끗한 말

"언어는 인격·성정을 비추는 거울
병든 말로 품격 깎아내리지 말고
맵시 있는 말만 오가는 세상 되길"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중국 송대의 소동파는 ‘산이 높아 달이 작고, 물이 낮아지니 돌이 드러난다’고 썼다. 달은 그 자체로 크지도 작지도 않고, 물에 잠긴 돌은 그 자체로 잘 보이지 않는다. 산의 높음으로 달의 작음이 드러나고, 물의 낮아짐으로 돌이 드러나듯이 사람의 품격도 숨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말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드러난다.

말과 언어는 사람의 얼과 정신에서 나온다. 아울러 말과 언어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 언어가 갈수록 비속어와 욕설로 오염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가 조악하고 타락한 시대라는 증거다. 사회가 타락했기 때문에 말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말이 타락했기 때문에 사회가 타락한 것이다. “이 도구는 덕을 이루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그 반대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언어는 사람 사는데 유용한 도구지만 이것이 불의의 도구로 쓰일 때 심각한 해악이 된다고 철학자는 경고하는데, 분명 우리 시대의 말들은 덕을 이루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도구이기보다는 그 반대의 목적을 위해 더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이니 염려스럽다. 한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그동안 온갖 욕설과 비속어들, 즉 타락한 말들로 도배돼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이들의 염려를 낳았다. 이 사이트에 최근 3년 동안 올라온 4만6000여 건의 게시물들을 언어의 형태소, 게시자 순위와 연관단어를 분석한 자료를 훑어보니, 가장 많은 게 욕설이고, 그 뒤를 이어 여성, 노무현이 등장한다. 이 사이트 활동가들의 정치 성향이 극우이고, 익명성 뒤에 숨어 제 불만을 내뱉는 집단이라는 것은 익히 알던 바지만, 이들 언어의 타락상이 이토록 심했나, 해서 새삼 놀랐다.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말은 사회 불만이나 여성 혐오를 드러내고, 성에 대한 제 욕구불만을 배설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들 언어의 타락상은 이들의 분노와 욕망이 건강하지 못한 것, 병든 의식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 뿌리내린 병리현상을 보여주는 작은 부분이다. 청소년들에게 욕설은 일상화된 습관이고, 정치판이고 어디고 가릴 것 없이 막말들이 차고 넘치는 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언어를 가다듬으며 풍요롭게 일구는 일에 가장 부지런한 이들은 시인들이다. 최근에 우리말의 어여쁨을 잘 살린 시집 한 권을 받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스물일곱 해 동안 한 여고 국어교사로 있다가 명예퇴직한 시인 오태환의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가 그것이다. “처마 맡에 말린 동지께 무청처럼 간조롱히 뿌리는 비는//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일껏 발품이나 팔며 그늘마다 구름 기슭 볕뉘처럼 움트는 비는//전당포도 못 가본 백통 비녀 때깔로 새들새들 저무는 비는//꺼병아 꺼병아 애꾸눈서껀 엿장수서껀 칠삭둥이서껀//안다미로 눈칫밥만 멕이다가 나무거울로 낯짝 가리고 내리는 비는”(‘안다미로 듣는 비는’)

간조롱히, 는실난실, 볕뉘, 안다미와 같이 감칠맛 나는 순우리말을 살려 쓴 오태환의 시들은 오감을 자극하면서 모국어의 황홀경에 가 닿는다. 비는 는실난실 날리고, 달빛은 개밥그릇이나 살강살강 부시고, 별빛은 새금새금 아삭한 맛이다. 천지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으로 움직이는데, 그것에 반응하는 시인의 모국어는 날렵하고 맵시 있다. 언어를 어르고 다루는 솜씨가 일품인 이 시들은 소리내어 읽으면 더 좋다. 의태어와 의성어의 풍성함으로 귀가 한층 즐겁기 때문이다. 독성 언어, 병든 언어, 찌든 언어, 천박한 언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이 언어들은 깊은 산골짝에 숨은 옹달샘을 만난 듯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박하고 비속한 말은 제 품격의 천박함과 비속함을 선전하는 일이다. 우리는 바른말, 간명하고 뜻이 분명한 말, 생각의 올바름을 바탕으로 하는 말을 쓰는 사람은 깊이 사귀지 않아도 어여쁜 사람이라는 걸 안다. 말과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과 성정을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