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아베의 '세번째 화살'…日증시 3.8% 급락

알맹이 없는 성장전략
법인세 감세·규제철폐 등 핵심 안건은 대부분 빠져

시장은 냉담한 반응
엔화가치 99엔대로 상승…선거용 정책 비판도 제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작년 말 취임하면서 ‘세 개의 화살’을 준비했다. 금융완화와 재정확대라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은 과녁을 향해 잘 날아가다 최근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장기금리 상승이라는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라는 장애물도 등장했다.

아베 총리가 5일 발표한 ‘성장 전략’은 ‘세 번째 화살’이자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최종판이다. 명중 여부에 따라 아베노믹스 전반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주가는 3.8% 급락하고, 엔화가치는 다시 99엔대로 상승했다.
○아베가 제시한 10년 후 청사진

아베 총리는 이날 세 번째 화살을 쏘아 올리며 여러 가지 목표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했다. 시중 통화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던 금융완화 정책과 마찬가지로 손에 잡힐 듯한 목표를 내걸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10년 내에 150만엔(약 1700만원) 이상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의 1인당 GNI(2011년 기준)는 약 450만엔(4만5180달러). 그의 약속이 실현되면 현재의 환율 기준으로 1인당 GNI가 10년 뒤엔 6만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국가전략특구’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외국 기업의 일본 내 직접투자액을 35조엔으로 확대하겠다는 수치를 덧붙였다. 농산물 및 식품 수출 1조엔, 풍력·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투자 30조엔, 인프라수출 30조엔 등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4월 발표했던 의약산업 육성 및 여성 노동력 활용 방안과 지난달 선보인 민간분야 설비투자 확대 방안 등도 이번 최종판에 모두 포함됐다.

○역효과 낳은 성장 전략

아베 총리의 야심작인 성장 전략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시장은 실망으로 화답했다. 이날 장 초반 상승세로 출발했던 일본 증시는 아베 총리의 발표 뒤 오히려 4% 가까이 급락했다. 전날 100엔 고지를 회복했던 엔화가치도 다시 90엔대로 상승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의 성장 전략에 특별히 신선한 내용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외국계 펀드를 중심으로 매도 주문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일본 재계가 요구해 온 법인세 감세와 해고규정 완화, 농업 및 의료분야 규제철폐 등은 결국 최종 성장 전략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아사히신문은 “정부 세출을 줄이겠다면서도 기존의 공공사업 추진 계획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며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손쉬운 내용만 포함시켰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 화살’도 만지작

아베 총리는 이날 성장 전략과 함께 재정건전화 방안도 내놓았다. 2015년까지 정부 재정적자 규모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고, 2020년에는 흑자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성장 분야에 자금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런 재정재건 방안에 ‘네 번째 화살’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금융완화 정책이나 성장 전략 못지않게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해 중요한 사안이라는 의미다. 일본의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훌쩍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러나 재정건전화 방안 역시 구체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적자 규모를 줄이는 데 핵심 사안인 ‘소비세 증세’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일 참의원 경제산업위원회에서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며 “증세가 일본 경제에 어느 정도 마이너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년으로 예정된 소비세 증세에 대해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재정지출을 줄이는 방안이라곤 ‘진행 중인 사업을 재검토하고 지방 정부와 보조를 맞춰 세출 억제에 힘쓰겠다’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이미아 기자 yagoo@hankyung.com